남대리를 가보았다. 남대리는 누가 봐도 소백산 넘어있기에 충청도나 강원도가 돼야 한다. 조선의 임금이 팔도를 거쳐 온 물을 다 먹고 싶은데 유독 경상도의 물을 먹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소백산 넘어있는 남대리를 경상도에 넣어서 팔도의 물을 먹은 데서 경상도 땅이 되었다. 실제로 남대리에는 선달산에서 발원한 하흘천이 흐르고, 이 물은 남대리를 지나 김삿갓계곡을 거쳐 영월에서 동강과 만나 남한강으로 흘러든다. 한강의 발원지라고도 한다.
남대리는 화전민들이 이룩한 마을이라고 전해진다. 남대리란 지명은 ‘남쪽에 있는 대궐’이라 하여 속칭 남대궐이라고도 했다. 순흥에 안치된 금성대군이 단종 복위를 위해 이곳에서 자주 밀사를 모의했으나 실패하자 그를 애석하게 여긴 백성들이 이곳에 정자를 짓고 ‘남대궐’이라는 현판을 붙인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러니 단종과 그의 숙부 금성대군에 얽힌 한(恨)이 서린 곳이 남대리이도 하다.
송지향 선생은 남대리를 동천(洞天)이라고 하면서 북서에는 선달산, 어래산, 형제봉이 둘러 있고, 동남으로는 준험한 마구령, 미내령, 고치령이 철옹성을 이루어 세상 티끌이 넘어 들지 못하는 아름다운 천석(泉石)에 농토도 좋은 편이어서 실로 도원경이라 이를 만한 천혜의 동산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남대리를 신선들이 살고 있는 하늘이 내린 이상향이라는 것이다. 옛날의 남대리를 상상해 보건대 하나도 어긋남이 없는 말씀이다.
부석에서 출발해서 부석터널을 지나면 바로 남대리의 첫머리인 주막거리가 나온다. 주막거리는 소백산자락길 9자락이 출발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마구령 옛길을 넘어가는 초입에 있는 주막거리이니 옛날에는 얼마나 흥성스러웠을까 하는 상상을 해 본다. 옛날 영월장이 너무 멀어 가지 못한 사람들은 부석장을 찾았다. 단양장이 너무 왜소해 성이 차지 않은 장꾼들도 부석장을 찾았다. 마구령을 넘으려면 반드시 주막거리에서 국밥 한 그릇에 막걸리 한 사발을 하고서야 넘었을 것이다. 봉화에서 영월을 가야 하는 사람들도 늦은목이 재를 넘어 주막거리를 지나갔다고 한다.
남대리에는 의풍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 유서 깊은 짐대배기 마을이 있다. 삼도접경공원이 있는 곳이다. 경상북도 부석면 남대리에 강원도 영월군의 김삿갓면과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 의풍리가 인접해 있다. 이곳 짐대배기 마을에서 구한말 의병들이 격전을 벌였다고 한다. ‘짐대’는 당간 곧 깃대로 의병의 깃발을 세웠던 자리라고 하여 마을 이름을 짐대배기라고 했다. 역사 유적으로도 예사롭지 않은 마을이다.
우리나라 어느 곳이나 사람이 살고 있는 마을에는 나름의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그러나 남대리의 이야기를 만나고 보면 한 마을의 이름에 들어 있는 이야기들이 큰 고을의 이야기보다 더 크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스토리텔링을 만들 수 있는 수많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이야기는 단순한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에 맥이 닿아 있어서 조금만 각색해도 살아 숨 쉴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그뿐만 아니라 마을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흐르는 물과 둘러싸인 산을 보면 경이롭기까지 하다. 사람이 사는 동네인지라 조금씩 사람의 손이 가기 시작하기는 했지만 마을을 조금만 벗어나면 아직은 자연의 모습이 마을을 가득 채우고 있다. 자연에 인공을 가미한 것을 문화라고 한다면 아직은 문화의 냄새가 진하지 않다. 된장 냄새와 된장 항아리에서 나는 갈색빛은 문화보다는 자연에 가깝다.
부석터널이 뚫리면서 남대리는 핫한 동네가 되었다. 그만큼 개발에 있어서 절제가 필요한 마을이다. 단양과 영월에서 부석사나 소수서원을 찾을 때 반드시 찾게 되는 마을이라고 한다면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다. 무분별한 상호가 어설프고 관광 안내판도 퇴락하여 무슨 글자인지 알아볼 수 없다. 새로운 남대리를 열려면 무엇보다도 지속 가능한 절제가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