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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호의 문화확대경

배용호 (전 영주교육장)

배용호의 문화확대경 [285] 서당(書堂), 향교(鄕校), 서원(書院)의 교육적 기능

2024. 06. 07 by 영주시민신문

서당, 향교, 서원은 우리나라 옛 교육 기관이다. 어찌 설립되었건 모두 교육 기능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들은 전국 각처에서 백성의 교화를 책임지던 매우 중요한 시설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각각 독특한 커리큘럼[敎育課程]이나 교수 방법으로 백성들의 교화에 책임을 다하였다.

그런 옛 교육의 형태를 지금의 일률적인 잣대로 견주어볼 바는 아니지만, 대략적인 성격을 짚어 보면, 서당은 향리 마을 단위의 기초 교육 기관이었기에 지금의 초등학교 과정으로 볼 수 있고, 향교는 고을마다 하나씩 나라에서 일률적으로 만든 기관이니 공립 중등학교 정도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 향교의 중심부는 성균관이라는 국립대학이다. 그에 비해 서원은 향리에 주재하는 사설 고등교육기관이었기에 오늘의 사립대학에 해당한다고 봐야 한다.

서당(書堂)의 기원은 대체로 고구려의 경당(扃堂)이라는 부락 단위의 학교가 통일 신라를 거쳐 고려 초기부터 전국 각처에서 성행하였다. ​서당 개설은 나라의 허가 사항이 아니었으므로 학식이 있다고 생각하는 선비는 누구나 자유롭게 설치할 수 있었다.

훈장이 교육 취미나 소일 또는 생계를 위하여, 이웃이나 친구의 요청으로 학동을 받아 수업하는 경우, 마을 전체에서 유능한 훈장을 모셔 와 자제 교육을 담당시키는 경우 등등 그 설립 사유가 자유분방했으므로 서당의 형태는 매우 다양하다는 특징이 있었다. 그러나 교육과정 면에서는, 학동이 맨 처음 대하는 <천자문>을 시작으로, 다음 과정의 <동몽선습> 또는 <명심보감>으로 초보적인 문장을 훈련한 다음, <통감>, <소학> 등으로 문리를 트이게 한 후,

<사서오경> 학습에 다다르도록 단계가 짜이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훈장과 그 가족의 생활비는 당연히 수혜자 부담이며, 봄·가을에 곡식으로 받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현대적 교육 시스템의 등장으로 옛 서당 형태가 지금까지 고스란히 유지되는 곳은 거의 없지만, 영주에는 남간, 봉강, 산천, 문천, 도림서당 등이 남아 그때의 흔적을 기억해내고 있다.

향교(鄕校)는 고려 시대 향학을 계승한 것으로 조선 초에 전국으로 퍼졌다. 향교 건물을 보면, 공자를 제사하는 대성전을 중심으로, 강당인 명륜당과 누각, 삼문 등이 유교적 예법에 따라 명확한 직선 축 형태를 취하는 것이 보통이다.

향교는 고을별로 학생의 수를 정하여 유교 중심 교육을 했는데, 여기서 향시(초시)에 합격하면, 생원이나 진사가 되어 성균관에 입학할 수 있었다. 현재의 향교는 아예 문묘 제향 기능만 수행하는 형태로 남아 있다. 전국 향교의 중심에는 ‘성균관’이라는 기관이 있는데, 이는 고려 충선왕 때 ‘국학’을 고쳐 부른 데서 연유되었으며 경향 각지에서 선발된 인재를 교육하였다. 조선 후기 340여 개소에 달하던 전국 향교는 현재 234개소로 축소되었으며, 영주에는 영주, 순흥, 풍기 이렇게 3개의 향교가 있다. 이는 구한 말 3개의 행정구역이 하나로 통합되었음을 말해 주는 증표이다.

서원(書院)이라는 이름은 당나라에서 유래된 말로 선현을 제사하는 사당과 청소년을 교육하는 서재(글방)를 아울러 갖추었다. ​조선은 건국 초부터 숭유 정책을 써서, 서재, 서당, 서원 등을 장려하였다. 사당과 서재를 모두 갖춘 서원으로는 풍기군수 주세붕이 순흥에다 안향을 모시는 사당을 지어 ‘백운동 서원’이라 한 것이 최초이며, 이후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다.

초기의 서원은 성리학적 인재를 키우고 유교적 향촌 질서를 유지하는 등 모두 긍정적인 기능이었으나 서원이 늘어나면서 학벌·당파 등과 연결되어 이익 집단으로 군림하는 폐단이 나타났다. 대원군은 그 폐해를 줄이고자 모범이 될만한 전국의 47개소 서원만 남기고 모두 철폐하도록 하였다. 이때 철폐된 서원이 900여 개소가 넘었으나, 이후 지금까지 600개소 이상이 복설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가장 대표적인 서원 9곳(소수, 옥산, 도산, 병산, 도동, 남계, 필암, 무성, 돈암)은 201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영주의 서당, 향교, 서원은 다른 지역에 앞서 선도적으로 설립되었으므로 이로 인한 훌륭한 인물들이 다수 배출은 당연한 귀결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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