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첫돌을 앞둔 딸이 아기를 데리고 집에 내려와 20여 일 동안 함께 지냈다. 이사 갈 집 사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부모 신세 좀 진다길래, 반가운 마음에 당연히 내려와서 지내야지 허락했는데 내려온 그다음 날부터가 예삿일이 아니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육아 전쟁. 물론 행복한 전쟁이기는 했으나, 육아가 얼마나 힘든지 피부로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어느 때보다 구체적이면서도 깊이 있게 육아 문제를 맞닥뜨릴 수 있었다.
우리 아이를 키울 때만 해도 철없이 바깥으로만 돌아다녀서 육아가 이렇게 힘든 줄은 몰랐다.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나서야 한다고 말로만 떠들고 다녔지 정작 우리가 우리 자녀를 키울 때는 별로 나선 기억이 없다. 늘 바쁘다는 핑계로 아내에게 육아를 전담하게 했던 지난날을 생각하면 슬그머니 미안한 마음도 있다. 그나마 요즘 젊은이들은 육아만큼은 부부가 함께 나선다고 하니 정말 다행이다 싶다.
이 녀석은 아침 6시만 되면 잠이 깬다. 육아에 심신이 피곤해서 곤하게 자는 딸이 애처로워서 아이가 아침을 먹는 7시까지 한 시간을 함께 놀아주는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니다. 작은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갓난아이들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거나 재미있는 놀이를 하더라도 5, 6분을 넘기기가 어렵다. 계산상으로도 아침 놀이를 10가지 이상을 생각해야 거뜬하게 한 시간을 보낼 수가 있는 것이다. 이게 하루의 시작이니 하루 종일은 또 어떻게 보내겠는가.
그렇다고 아이가 규칙적으로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새로운 장난감으로 옮겨가며 노는 것이 아니다. 그야말로 수많은 돌발상황이 사이사이 도사리고 있다. 뒤로 넘어진다든지, 높은 곳에서 떨어진다든지, 각진 모서리에 생각도 없이 돌진한다든지, 뾰족한 물건을 어디서 찾아왔는지, 가슴을 쓸어내리는 상황을 한두 번 겪는 것도 아니다. 이런 돌발상황을 한 번씩 만나면 다리에 힘이 풀린다.
아이가 낮잠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아이를 키우는 모든 엄마는 늘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잠시라도 정신 줄을 놓는 순간이면 아이는 사고로 이어진다. 정말 육체적인 힘뿐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엄청나다 싶다. 물론 이런 고달픔이 아이의 웃음소리 하나에 사르르 없어지기도 하지만 그것으로 육아 문제를 덮으면서 아이사랑만 말하기에는 육아의 현실이 너무나 녹녹지 않다.
가끔 유모차를 몰거나 아기 띠를 두르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아이 엄마를 볼 수 있다. 사실 처음 이런 아기 엄마를 만났을 때 나름 의아스러운 면이 있었다. 아기 띠에 안겨 있는 아이와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만남이 왠지 모르게 부자연스럽게 느껴졌었다. 정말 아이를 돌보면서 유일하게 즐길 수 있는 일이 아기 띠를 매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마시는 것임을 몰랐다.
실제로 그랬다. 집에 아기가 와 있는 20여 일 동안 손에 잡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시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을 쪼갤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아기를 기르는 모든 아기 엄마가 그랬을 것이다. 그들에게 자기 삶이란 그렇게 많지 않다. 커피를 마시는 일이 즐거움 중에서 하나인 것을 생각하니 미안하기 그지없다. 사랑이 아니면 육아의 스트레스나 자기의 희생에서 오는 우울감에서 벗어날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육아는 전쟁과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혼자서 감당할 수가 없다. 전쟁을 혼자서 수행하는 사람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육아는 반드시 두 사람 이상이 필요하다. 둘 부부든, 부모와 자신이든,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이든, 돌봄센터든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인디언들의 속담처럼 마을 전체가 나서야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육아에 대한 정책도 반드시 이곳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반드시 아기 엄마 혼자서는 감당할 수가 없다는 차원에서 경제적인 지원이나 인력 지원이 필요하다. 이것이 육아 전쟁을 감당할 수 있는 첫 번째 기본적인 조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