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배용호의 문화확대경 [282] 우리 마을 땅이름 < 배용호의 문화확대경 < 오피니언 < 큐레이션기사 - 영주시민신문

상단영역

뉴스Q

기사검색

본문영역

배용호의 문화확대경

배용호 (전 영주교육장)

배용호의 문화확대경 [282] 우리 마을 땅이름

2024. 04. 26 by 영주시민신문

국호(國號)나 도명(道名), 특별한 산 이름 정도 큰 지명이 아니면 대부분의 우리네 마을 이름은 자연발생적으로 붙여지는 것이 보통이다. 위치나 형상 등의 특징에 의해 마을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던 이름들이 지명으로 정착되는 것이다. 그러니 지명은 당시 민초(民草)들에 의해 가장 쉽고 편하게 부르던 이름이 지명으로 살아남게 되는 원리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다시 말해서, 대단한 학자나 선비들의 거창한 세미나에 의해 작명된 게 아니라 이 땅을 살았던 민초들의 가장 쉬운 구분 방식에 의해 가볍게 생성되어 정착되므로, 지명을 이해하려면 생성 당시의 민초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이 된다. 즉, 아낙네들의 빨래터 버전이 가장 많다고 본다면 그네들의 눈높이에서 지명을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큰골, 작은골이 생기고, 웃마, 아랫마와 양지마, 음지마, 그리고 산마을, 들마라는 지명이 생기는 것이다. 이런 쉽고 편한 우리말 이름을 억지로 한자로 기록하게 되면, 소곡(小谷), 대곡(大谷)이 되고, 상촌(上村), 하촌(下村), 양촌(陽村), 음촌(陰村)이 된다. 그리고 산촌(山村), 평촌(坪村)이 되기도 한다. 이 정도만 되어도 양반이다.

우리 글이 없었던 시절, 우리말로 된 지명들을 표기할 방법이 없어 하는 수 없이 발음 나는 대로 한자로 써 두던 습관, 즉 이두식(吏讀式) 표기 방식에 오랫동안 젖어, 소리대로 한자 적던 습성이 만연되어 있었다.

이를테면, 우리말 ‘작은골’을 소리 나는 대로 [鵲隱骨]이라고 표기했던 게 세월을 지나 ‘까치가 숨어 살던 바위’로 둔갑한다든지, ‘작은 골짜기’라는 뜻을 가진 ‘까치골’을 한자식 [鵲洞, 작동]이라고 써 놓고는 ‘까치가 많이 살았던 마을’이라고 지명 유래를 우겨 붙인다면 전국에 골고루 자유롭게 흩어져 사는 까치에 대한 모독이지나 않을지?

우리말에서 ‘크다’는 뜻을 가진 ‘큰골(한골)’을 대곡(大谷)이라고 쓰는 것만도 억울한데, [恨谷, 한곡]이라고 써 놓고는 ‘한 많은 골짜기’라고 전설을 지어낸다든지, 한골이 ‘항꼴’로 발음된다고 해서 항아리를 닮은 골이라는 억측을 내세운다면 실로 억장이 무너진다.

지명은 고유명사이므로 원래 태어나던 때의 이름 그대로를 불러주는 것이 마땅하다. 지명이 한자로 태어나는 경우는 드물기에, 우리말 이름 찾기, 그것도 우리말 고어(古語) 찾기에 힘써야 한다는 말이 된다.

샘실이 천곡(泉谷)이 되고, 뒤실을 후곡(後谷)으로, 못골을 지동(池洞), 기프실을 심곡(深谷)으로, 돌다리를 석교(石橋)라고 부르는 것은 그나마 양반이다. 원래의 뜻이 살아 있는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칫하면 오류에 빠지기 쉬우므로 이마저도 권장할만한 사항이 못 된다.

‘무섬’을 물속의 섬이라 해서 ‘수도(水島)리’라고 부르면 매우 그럴듯해 보이지만, 기실, 세상의 섬이 물속 아닌 곳이 어디 있느냐는 반문을 받게 된다. 바다 섬은 해도(海島), 강 가운데 섬은 강도(江島)라고 불러야 하는가? 무섬은 물속의 섬이 아니라 ‘뭍섬’에서 유래되었다는 의견이 많다. 이른바 ‘육지 속의 섬’이라는 뜻이다. 이런 시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수도리가 아닌 ‘무섬’이라는 원래의 지명을 써야 한다는 의견이다.

이외에도 오류의 소지들은 많다. ‘솔다’라는 말은 소나무를 지칭하는 게 아니라 ‘넓이나 폭이 좁다’는 뜻의 순우리말이다. 그래서 ‘솔골’은 송곡(松谷)이 아니라 ‘폭이 좁은 골짜기’를 이른다. 또, ‘솔안’이라는 지명은 송내(松內)가 아니라 가까운 마을을 ‘솔안’이라고 부른다. ‘아치나리’는 거위와 관련이 없는 아천(鵝川)에서 온 것이라기보다는 작다는 뜻의 ‘아치’와 나루라는 뜻의 ‘나리’가 합쳐진 작은 포구를 말한다고 한다.

사람에게 이름이 붙여지는 순간 그의 역사가 시작되듯이, 땅에 이름이 붙는 순간 이 땅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래서 땅이름은 붙이는 것도, 해설하는 것도, 모두 조심스러워야 한다. 그러함에도 사람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엉뚱한 나름의 해설을 붙여낸다.

가장 큰 오류는 아무렇게나 써진 한자를 깊이 있게 역으로 해석해내려는 노력이다. 그런 억지 노력이 얼마나 큰 오류를 확대 재생산하게 되는지를 깊이 생각해봐야 할 시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