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구령 터널(부석 터널)이 임시 개통되었다. 콩세계과학관 앞에서 남대리까지 불과 몇 분이 걸리지 않았다. 가파른 마구령을 넘을 때를 생각하면 정말이지 상상치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마구령 터널을 지나 김삿갓문학관까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할 수 있었다. 부석사를 지척에 둔 영주로서는 또 한 번의 도전과 기회의 시간이 올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마구령을 넘으며 고생을 해본 필자로서는 마구령 터널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꽤 오래전에 지금은 폐교가 된 마락분교에서 청소년 관련 집회를 가진 적이 있다. 극기 훈련을 한답시고 단산 좌석에서 마락분교까지 고치령을 넘어 두세 시간이 걸려 넘어갔다. 문제는 마락분교에 도착한 그날 저녁이었다. 비가 얼마나 쏟아지는지 거짓말 하나 보태지 않고 큰 바위 굴러 내려가는 소리가 계곡에서 쿵쿵거려서 학생들이 잠을 잘 수 없을 정도였다. 마락 분교 운동장 초입까지 물이 찰랑거릴 정도였으니 어떻게 잠을 잘 수가 있었겠는가.
더 큰 문제는 다음 날이었다. 마락분교에서 영주로 가는 모든 길이 끊기고 말았다. 그때만 해도 중장비가 부족해 쉽게 수해복구 공사를 할 수도 없었다. 길이란 길은 모두 끊기고 계곡 다리에는 바위들이 걸려서 걷기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길이 날 때까지 차는 그대로 마락분교에 두고 우리는 학생들을 데리고, 부석사 아래 삼거리까지 걸어갈 것을 결심하고 집회를 끝낸 다음 날 일찌감치 아침을 먹고 마락분교를 출발했다.
마락분교에서 남대리를 지나 마구령으로 올랐다. 마구령 오르는 길도 패고 나무가 넘어져서 그야말로 전쟁터 같았다. 남대리에서 마구령 잿마루까지는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었다. 점심 때쯤 잿마루에 도착한 우리는 마실 물도 변변하지 못한지라 산에서 흐르는 물을 받아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지금까지 먹어본 라면 맛 중에서 그때 그 맛이 최고였다. 입이 까다로워서 평소에 라면을 먹지 않던 학생도 얼마나 라면을 맛있게 먹는지, 그날 눈물겨웠던 광경을 지금까지도 잊을 수가 없다.
부석사 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라면을 먹은 학생들은 위험할 정도로 마구 뛰기 시작했다. 부석북부초등학교까지 걸어오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삼거리에 봉고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차에 오른 지 채 5분이 지나지 않아 우리는 모두 잠에 곯아떨어졌다. 쿵쾅거리며 바윗돌 굴러간 소리에 잠들지 못하고 하루 종일을 걸었으니 그대로 잠이 들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마구령은 그렇게 우리를 호되게 혼을 냈다.
마구령 터널을 지나서 김삿갓 문학관을 향했다. “네 다리 소반 위에 멀건 죽 한 그릇/ 하늘에 뜬 구름 그림자가 그 속에서 함께 떠도네./ 주인이여, 면목이 없다고 말하지 마오./ 물속에 비치는 청산을 내 좋아한다오.” 칠언절구로 이루어진 김삿갓의 시 ‘무제(無題)’이다. 산골의 가난한 농부 집에 하룻밤을 묵었는데 주인은 가난하여 저녁으로 멀건 죽을 내놓았다. 얼마나 죽이 멀건지 하늘에 뜬 구름이 비칠 정도다. 화자는 내가 청산을 좋아하니 미안해하지 말라고, 오히려 청산이 죽에 비쳐서 좋다고 말한다.
김삿갓은 죽에 비친 청산을 보는 것이 더 좋다는 말로 농민을 위로하고 있다. 농민들이 어렵게 살아가는 현실에 대해서는 풍자로 여지없이 비판하고, 어려운 농민들에게는 해학적으로 미안해하는 마음을 위로하고 있다. 아무리 어렵고 사는 게 힘이 들어도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을 버리지 않은 김삿갓의 모습이 어우러진 빼어난 작품이다. 짧은 칠언절구 속에 해학과 풍자와 삶의 여유가 어우러지고 있다.
길은 이야기를 만든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길은 없어지기도 하고 새로 생성되기도 하면서 길은 길로 이어진다. 마구령 터널이라는 새로운 길이 생겼다. 이제 마구령 터널도 새로운 이야기를 써나갈 것이다. 아니 마구령 터널 자체가 이야기를 만들어 가기보다는 터널 이쪽과 저쪽의 이야기들이 연결되고 만들어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