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는 선비의 고장이다. 선비는 영주의 정체성이며 다른 지역과는 차별화되는 최고의 브랜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요즘 들어 선비라는 말이 너무 고루하고 고리타분하게 느껴진다고 해서 ‘선비’라는 말 쓰기를 꺼리는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 선비가 영주의 이미지를 망치고 있다고 하여 선비를 아주 몹쓸 말로 폄훼하는 사람도 가끔 볼 수 있다. 정말 선비라는 말이 이렇게까지 괄시받아도 되는지 한 번쯤은 곰곰이 따져볼 필요가 있겠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는 ‘또 선비 타령이야!’ 하면서 역정을 내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분도 조금은 이해가 가는 것이 요즘처럼 글로벌한 시대에서 역사 속에 케케묵은 것 같은 선비가 자꾸 언급되니 그런 짜증스러움은 충분히 이해가 가고도 남음이 있다. 먹고 사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때에 허황해서 전혀 구체적으로 다가오지 않는 선비라는 말을 붙이니 뭔가 현실성이 없다는 생각도 들 것이다.
영주시민 1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행정수요 조사에서 영주시민들은 경제도시, 교통·생활 인프라, 부자 농촌 도시, 관광도시를 가장 많이 꼽았으며, 일자리 창출, 도로 확장 및 불법 주·정차 단속, 농특산물 홍보, 병원 확충, 어린이 놀이 시설과 공원조성 등에 많은 의견을 제시했다. 행정수요 조사에서 경제도시가 단연 으뜸이었다. 영주시도 시민이 원하는 활력있는 경제도시 건설을 최우선으로 약속했다.
어쩌면 경제도시는 당연한 귀결이 아닌가 싶다. 경제도시는 모든 도시가 공통되게 관심을 가지는 문제라고 하겠다. 당장에 먹고 사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없고, 경제도시만큼 그 지표가 확실하게 드러나는 것은 없다. 더구나 행정수요 조사이니만큼 먹고 살아가는 문제, 우리의 실생활과 관련되는 문제들이 당연히 관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시정의 가장 큰 목표로 경제도시를 삼는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선비는 먹고 살아가는 문제가 아니라 가치의 문제이다. 그렇다고 조선시대의 남산골 딸깍발이처럼 세상 물정 모르고 살아가는 것을 가치로 삼는다는 뜻은 아니다. 딸깍발이의 의미처럼 신을 신이 없어서 마른날에도 나막신을 신고 다니면서도 큰소리를 치는 가난한 선비를 치하하자는 뜻은 더더욱 아니다. 먹고 살아가는 문제를 강조하는 것이 선비정신을 해치지는 않는다. 경제도시는 먹는 문제이지만 선비도시는 가치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렇다.
사전에서는 선비를 학식이 있고 행동과 예절이 바르며 원칙과 의리를 지키는 고결한 성품을 지닌 사람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선비의 핵심적 가치는 세속적 이익을 배제하고 인간의 성품에 뿌리 한 의리(義)를 실천하는 데 있다고 한다. 선비는 시대마다 사람마다 조금씩 의미의 차이는 있으나 ‘사람다운 사람’으로 요약할 수도 있겠다. 그러니 선비를 고리타분한 과거의 유물이나 고루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영주 쌀 이름 중에 ‘선비숨결’이 있다. 선비가 들어간 말 중에 가장 뛰어난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선비세상’도 잘 지은 이름이다. 선비가 영주의 가치요 정체성이니만큼 선비가 들어가는 말을 많이 지어낼 필요가 있다. 뼛속 깊이 선비라는 말을 들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아무 때나 어느 곳이든지 선비를 쓰는 것은 바람직하지는 않다. 선비라는 용어를 많이 쓰되 심사숙고하여 누구나 무릎을 탁, 하고 칠 수 있는 그런 이름을 붙여야 할 것이다.
선비라는 말을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당연히 써야 한다. 지금보다 더 많이 써야 한다. 선비는 양반처럼 계층이나 차별을 의미하지 않는다. 조선시대에서도 양반의 상대어는 상놈이었지만 선비의 상대어는 없었다. 억지로 찾으려고 한다면 인간 같잖은 놈쯤이 될 것이다. 양반은 우리나라 인구의 5%를 넘지 못했으나 선비는 그 범위가 무한정이다. 양반은 물건처럼 사고 팔았으나 선비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선비는 가치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니 아무리 먹고 사는 문제가 중요하나 선비의 가치를 무시한다면 영주의 정체성을 잃어버릴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