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배용호의 문화확대경 [277] 카페와 선비는 대척점일까? < 배용호의 문화확대경 < 오피니언 < 큐레이션기사 - 영주시민신문

상단영역

뉴스Q

기사검색

본문영역

배용호의 문화확대경

배용호 (전 영주교육장)

배용호의 문화확대경 [277] 카페와 선비는 대척점일까?

2024. 02. 15 by 영주시민신문

근년 들어 ‘카페’라는 단어가 우리 곁에 부쩍 다가섰지만, 수백 년을 보듬어 온 ‘선비’라는 글자는 오히려 냉대받고 있다. 요즘 젊은이들이 주로 카페 등에서 부산하게 정보를 공유하는 데 비해, 조선 선비들은 외려 조용한 냇가로 나가 사색을 즐겼으므로 이들은 출발점부터 이질 공간 소유자들이었을까?

원래 ‘카페’는 ‘커피’를 이르는 말이었지만, 이제는 ‘커피를 파는 가게’로 거의 정착해 있다. 나아가 카페, 커피숍, 다방, 찻집을 모두 아우르는 통칭어로 자리 잡았다. 가끔은 다른 물건을 파는 곳도 카페라는 이름을 임대하는 경우까지 생겨났다.

한국의 카페문화는 이미 서양을 제쳐낸 느낌이다. 프랑스의 카페 역사가 400년을 자랑한다지만, 최단기 「카페공화국」 달성 기록은 단연 우리가 아닐까? 국민 1인당 연간 커피 소비량 405잔은 세계 평균의 약 3배 가량이나 된단다. 우리의 카페 역사 50여 년이 이뤄낸 한민족의 쾌거라고 해야 하나? 전국 10만 카페점을 조기 달성했고, 이제 매년 12,000점포 정도가 개점하고 또 폐점한단다. 한쪽에서는 이미 폐점 정리업체가 뜨고 있다는 이야기가 수군거린다.

카페가 우후죽순처럼 생기면서 「카페투어」라는 신종 취미가 개척되더니, 급기야 오픈 전 테스트 맛을 즐기는 「가 오픈 카페투어족」까지 생겼다니 참으로 발 빠른 대응이다. 우리는 왜 이처럼 카페에 열광하는 민족이 되었을까? 카페는 공간을 파는 곳이다. 집과 직장이 아닌 제3의 브런치 공간이다. 미팅, 환기, 소셜 활동, 글쓰기, 영상 편집 등 다양한 가치를 즐기는 곳이라고 그들은 변명한다. 또한, 그곳에서 소소한 행복을 보상받는다고도 주장한다. 그래서 밥은 굶어도 카페는 출근해야 한다나.

선비가 정장 차림으로 카페 문을 연다면 어떤 반응일까? 길거리에서 ‘커피 한 잔 하실까요?’ 대신에, 젊잖게 ‘시(詩) 한 수 하실까요?’라고 한다면 도대체 어떤 상황이 연출될까? 그리고 카페와 선비는 생산적일까 소비적일까?적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카페로 출근함은 행복을 보상받는 당연한 장소로 치부하면서, 선비들의 냇가 소요는 쓸데없는 낭비로 곧잘 단정 짓곤 한다.

선비들은 수시로 냇가를 찾아 수련한다. 물소리를 해석하면서 거기서 만나는 또 다른 선비들과 자연스럽게 토론을 펼친다. 이른바 「냇물투어」이다. <물은 그 흐름을 봐야 한다. 물이 웅덩이를 만나면 이를 채우지 않고는 다음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즉 흐르는 물줄기 하나에도 그들의 수련 격문을 발견해내는 수준 높은 자연과의 대화 방식인 셈이다. 그런 대화의 결과가 시(詩)와 문장이라는 결과물로 생겨난다.

늘 배회하는 집 주위보다 새로운 공간에서 그런 대화가 활달해짐은 카페족의 투어 사유와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무위자연을 추구하는 선비들은, 어제도 오늘도 카페를 찾는 카페족처럼 그들도 어제도 오늘도 물가를 찾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아예 수련 목표를 바위에 새겨서 각오를 다지기도 한다. 이것이 바위글씨이다. 그런데도 오늘의 카페족들이 옛 선비들의 냇가 수련 방식을 이해하지 않는다면 이야말로 자가당착이 될 것이다.

오늘의 시인이나 예술가가 공장에서 쇠붙이를 두들기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들을 건달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그러면서 선비가 밭갈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들을 반건달로 몰아세우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논리이다. 공부하는 학생을 하나의 직업인으로 본다면 그 당시 선비의 직업은 무엇이어야 할까? 오늘의 잣대로 옛 생활을 잰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짓인지도 따져 봐야 할 시점이다.

카페족들이 카페를 찾는 또 다른 이유로는 카페인 각성으로 업무 효율 상승을 이끈다는 것이다. 선비들은 이미 까마득한 옛날부터 그들의 강학 영역에 은행나무를 심었다. 배출되는 징코민으로 머리를 각성시키고자 함은 물론이다. 그러니 어쩌면 카페의 출발점이 선비의 은행나무에서 태동되었을지도 모를 일이 아닌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