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배용호의 문화확대경 [273] 근대화의 초석이 된 파독 광부 60년 < 배용호의 문화확대경 < 오피니언 < 큐레이션기사 - 영주시민신문

상단영역

뉴스Q

기사검색

본문영역

배용호의 문화확대경

배용호의 문화확대경 [273] 근대화의 초석이 된 파독 광부 60년

2023. 12. 21 by 영주시민신문

“글뤽 아우프!(Glück Auf)!”

이역만리 독일에서 1000m~2000m 지하 갱도에 들어갈 때마다 광부들끼리 나누던 인사라고 한다. ‘돌아 나오는 행운을 가지라’ 즉, ‘꼭 살아서 나오세요!’ 정도로 해석되는 이 인사는 탄광의 살벌한 삶을 짐작하게 한다.

1960년대 우리 국민소득은 1인당 80달러 수준이었다. 당시 북한이 140달러였다고 한다. 인구 2400만 명인 나라에 실업자가 250만 명이 넘었었다. 어떻게든 먹고 살기 위해 몸부림치던 그때였다.

급기야 정부는 1963년부터 14년간 약 8,000명의 청년을 서독 탄광에 취업시켰다. 이들 파독 근로자들은 자신들의 땀과 눈물의 대가를 악착같이 모아 거의 모두를 고국에 송금했다. 연간 총수출액의 2%에 육박하는 거금이었다. 1달러가 소중했던 세계 최빈국 한국 경제 발전의 종잣돈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또한, 정부는 이들 근로자들을 담보로 독일에 1억 5900만 마르크를 빌렸다. 그 돈으로 고속도로 놓고, 철도를 깔고, 공장을 세웠다. ‘한강의 기적’은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맨 첨 367명을 뽑는 파독 광부 모집에 2800여 명의 지원자가 몰렸다고 한다. 대졸자도 20%나 되었다. 신문마다 합격자 명단을 고시 합격생처럼 다루었다.

당시 국내 직장인의 8배나 되는 급여 때문에 한몫 잡으려는 대졸 광부, 공무원 광부가 넘쳐난 것이다. 그러나 막상 도착한 독일의 광부 생활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세계의 어느 광산이 갱내에 카페를 차리겠냐만, 탄광 생활은 늘 목숨 건 줄타기였다. 국내 탄광보다는 다소 기계화가 진척되어 있다지만, 체격이 큰 독일인에 맞춰진 기계가 우리 광부에게만 별달리 친절할 리가 없었다.

기계와 호흡이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곧장 사고가 터진다. 갱도가 그냥 무너질 때도 있다. 도망갈 곳도 없다. 손가락이 부러지는 것쯤은 일상이란다. 이런 생사의 경계선에서 부디 “오늘도 무사히!” 기원이 “글뤽 아우프!(Glück auf!)”인 것이다.

1964년, 박정희 대통령이 차관(借款)을 빌리기 위해 서독을 방문했을 때의 일화가 가슴을 친다. 지구촌 최빈국에 비행기가 있을 리 만무했다. 서독에 부탁해 간신히 빌린 비행기는 홍콩·방콕·뉴델리·로마 등을 거치며 일반 승객들과 같이 타고 내리기를 반복하여 약 30시간 후에야 서독 상공에 들어섰다.

광부들을 만난 자리에서 박 대통령이 “우리 후손 만큼은 결코 다른 나라에 팔려 나오지 않도록 하자”는 목 메인 다짐에 대통령 내외는 물론, 수행원도, 광부도 서로를 부둥켜안고 울었다는 「대한뉴스」 기사가 아직도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70대의 뤼프케 대통령은 호텔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계속 울고 있는 40대의 박정희에게 자신의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주며, <미래가 있는 민족>이라고 그 자리에서 차관을 약속했다고 한다.

2023년 12월 22일은 한국인 근로자가 눈물 섞은 외화벌이를 위해 독일에 파견을 시작한 지 60주년 되는 날이다.

서독과의 관계 증진, 근로자들의 고국 송금, 국내 노동시장 압박 완화라는 일석삼조(一石三鳥)의 효과 덕분에 한국은 불과 60년 만에 선진 산업국가로 진입했고, 이제는 타국의 노동자들이 한국으로 유입되는 근로 역전 현상까지 일어나고 있다.

휴천동의 김○○(73세) 씨는 1977년 파독 광부 출신이다. 우리 지역에는 그보다 먼저 파견되었던 다른 광부들도 더러 있었으나 대부분 작고했고, 생존해 있더라도 바깥출입이 어려운 사람이 많다고 한다. 그는 당시의 광부작업복도 보관하고 있었다.

작업복을 보기만 해도 그때의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떠오르기 때문이다. 생사고락을 함께한 소중한 그의 작업복은 현재 영주문화원 근현대자료로 기증하였다. 지금은 축산업을 하면서 그런대로의 생활을 부지하지만, 귀국 직후 사업이 원활치 않아 벌어온 재산이 좀 축났다고 한다.

또, 광부 시절의 후유증 때문인지 얼마 전부터는 허리가 아프고 걸음걸이가 시원찮다. 조국 근대화 주춧돌이 된 파독 광부 60년 세월의 반추라고나 할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