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시간에 들은 유머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더니 어머니에게 자랑스럽게 말했다. “엄마, 우리나라에는 쥐띠가 제일 많은가 봐!” 아이의 말에 당황한 어머니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그 이유를 물었다. 아이의 대답. “우리 반 아이들 대부분이 쥐띠야!” 나이가 같으면 띠가 같다는 사실을 모르는 아이가 우리나라 대부분 사람이 쥐띠라고 생각하는 것도 일리가 있다. 참 재미있는 유머지만 곱씹어 보면 의미심장하기도 하다.
트위터, 유튜브, 페이스북 등 거대 미디어 플랫폼을 보다 보면 참 신기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스포츠에 대한 것을 검색해서 보고 싶은 콘텐츠를 흥미 있게 보고 나면 그 플랫폼을 열 때마다 비슷한 내용의 콘텐츠가 계속해서 화면에 뜨는 것을 볼 수 있다. 건강에 관심이 있어서 검색한다든지 상품을 사기 위해서 검색하면 뉴스를 보려고 열어도 비슷한 콘텐츠가 계속 화면에 떠서 짜증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필자는 이 분야에 깊이 있는 말을 할 수 있는 전문적인 식견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그러니 전문적인 말을 할 수는 없다. 이런 현상을 알고리즘과 관련하여 설명할 수가 있는데 그런 어려운 얘기를 쓰자는 것도 아니다. 단지 스마트폰으로 이것저것을 가볍게 보면서 불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말 속에 불만이 가득하니 아무래도 감정적인 말이 섞일 수밖에 없다. 플랫폼을 사용하면서 비슷한 생각을 하는 분들에게 호소하는 뜻도 있다.
유튜브, 페이스북, 트위터의 알고리즘은 이 플렛폼을 사용하는 개인 취향이나 관심 있는 내용을 고려하여 콘텐츠를 제공한다. 이용자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성향을 가졌는지, 자주 검색하는 내용은 무엇인지를 분석하여 콘텐츠를 제공해 주는 것이다. 좋게 말하면 우리가 관심 있게 보고 있는 것을 분석하여 친절하게 비슷한 내용을 제공해 주는 것이다. 사람으로 말하면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끊임없이 제공하는 것과 같다.
부정적으로 본다면 내 은밀한 비밀이 탄로 나는 것만 같다. 아니 탄로가 나서 다음에 스마트폰을 열면 여지 없이 비슷한 내용의 플랫폼이 끊임없이 쏟아진다. 제공되는 콘텐츠가 얼마나 많은지 봐도 봐도 끝이 없다. 이쯤 되면 너무 친절해서 짜증이 나는 상황이 오게 되는 것이다. 친절을 넘어서 강요를 당하는 것 같은 짜증스러움이 밀려온다. 정보를 떠나서 모든 걸 지우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사석에서 어떤 분이 말했던 탄식이 생각난다. 요즘엔 텔레비전이나 페이스북, 유튜브를 보면 건강에 대한 콘텐츠가 수없이 쏟아진다. 우리 몸에 좋다는 것도 많고 먹어서 안 될 것도 많다. 이분이 텔레비전이나 페이스북, 유튜브 등에 좋다는 것과 나쁘다는 것을 계속 적어봤다고 한다. 결과는 좋다는 것이 나쁜 것에도 있고, 나쁘다는 것도 좋다는 것에도 많아 나중에는 건강에 뭐가 좋은지, 나쁜지가 구분이 되지 않더라는 것이다.
유튜브에서 보수적인 개인 채널을 즐겨 보면 계속해서 보수적인 채널이 제공된다. 마찬가지로 진보적인 색채가 강한 채널을 즐겨 보면 다음 유튜브를 열 때 비슷한 색채의 채널이 계속 제공된다. 그렇게 유튜브를 계속 보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어느 한 곳으로 점점 기울어서 나중에는 심하게 기울어진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 그래서 그것만이 이 시대를 대변하는 것이라고 믿고, 이젠 자기가 직접 여기저기 콘텐츠를 제공하게 된다.
박주연 교수는 “플랫폼의 알고리즘 기술 적용으로 제공되는 정보는 특정 편향성을 강화하는 문제가 있고, 이는 가치 편향적 사고를 유도하거나 차별을 일으킬 수 있다.”라고 말했다. 어쩌면 우리도 서두에서 말한 초등학교 1학년처럼 ‘이 세상에 쥐띠가 제일 많다.’라고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보이지도 않는 손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고 있다. 태산보다 더 높은 거대한 데이터가 우리를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내몰고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도 까마득하게 모른 채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