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나 가을은 축제의 계절이다. 영주에서도 풍기인삼축제가 지난 7일부터 남원천과 풍기팝업공원에서 열리고 있고, 무섬외나무다리축제도 지난 7,8일 무섬마을에서 열렸다. 축제가 열리는 풍기와 무섬마을에는 차와 사람으로 가득하여 축제가 열리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찬란한 영주의 문화유산과 함께 볼거리나 먹을거리, 즐길 거리도 풍성해서 모처럼 영주 전체가 들뜬 분위기로 흥성하여 보는 사람들도 마음이 출렁거렸다.
어떤 분들은 축제가 너무 많다고 축제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우리나라 전체로 보거나 영주에서 개최되는 축제만 해도 손가락을 금방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은 사실이다. 축제가 많다고 비판적으로 축제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일리는 있다. 지역 이름만 바꾸면 어느 고장의 축제인지 모를 축제들도 많아서 독창성을 잃어버린 축제들도 꽤 있다. 그래서 있는 축제를 없애기도 하고 흩어진 축제를 합치기도 해서 정리할 필요성도 있다.
그러나 크고 작은 축제는 적당하게 있어야 한다. ‘적당하게’란 말속에는 숫자의 개념보다는 독창성의 의미가 들어 있다. 지역마다 마을마다 독창성이 있다면 그런 축제는 얼마든지 많아도 괜찮다는 뜻이다. 오히려 이런 축제들은 권장해야 마땅하다. 인적 물적 자원이 없는 마을에서 축제를 여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지방 자치 단체에서 보조하기 이전에 먼저 축제를 열 수 있는 능력을 검증받기란 더더욱 쉬운 일이 아니다.
“재물은 비유하자면 우물이다. 우물에서 물을 퍼내면 물이 가득 차지만 길어 내지 않으면 물이 말라버린다. 마찬가지로 비단을 입지 않으므로 나라에는 비단 짜는 사람이 없고, 그 결과로 베를 짜는 여인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조잡한 그릇을 트집 잡지 않고 물건을 만드는 기교를 숭상하지 않기에 나라에는 공장(工匠)과 도공(圖工), 대장장이 할 일이 사라졌고, 그 결과 기술이 사라졌다. 나라 농업은 황폐해져 농사짓는 방법이 형편없고, 상업을 박대하므로 상업 자체가 실종되었다. 사농공상(士農工商) 모두가 곤궁해져 서로를 구제할 길이 없다.”
박제가의 『북학의(北學議)』에 나오는 ‘시장과 우물’ 중 한 부분이다. 현대 어떤 시장 이론에도 뒤지지 않은 탁월함이 엿보인다. 박제가는 검소한 삶을 산다면서 시장의 원리를 모르는 우리나라를 예리하게 비판하고 있다. 시장이 형성돼야 물건을 유통하고 거래하면서 경제를 윤택하게 하는 도(道)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재물을 사용할 방법을 모르기에 재물을 만들 방법을 모르고 재물 만들 방법을 모르기에 백성들의 생활은 날이 갈수록 궁핍해진다는 것이다.
박제가의 이론을 빌리면 축제는 새로운 시장이 형성되는 것이다. 축제를 통해서 물류가 돌아간다는 것이다. 축제가 열리는데 축제가 사치하다거나 낭비가 심하다는 이유로 멀찍이서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축제장에 나가서 음악을 즐기고 음식을 먹으며 물건을 사면서 물류가 돌아가는 것을 일정 부분 즐길 수도 있어야 한다. 박제가가 바른 소비를 권장하듯이 축제장에서 이루어지는 적절한 소비는 미덕이 될 수 있다.
영주에서 이루어지는 축제도 우물이 되어야 한다. 우물에서 물을 길어서 마을 사람들을 살리고 지나가는 길손이 목을 축이듯이 그렇게 목마른 사람에게 물을 주는 그런 축제가 돼야 한다. 축제 하나로 사람을 살린다는 것은 너무나 비약적인 말이기는 하지만 축제로 인해 막힌 물류가 뚫려서 돌아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다면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시장을 통해서 사농공상이 살아나듯이 말이다.
소백산자락에 사과가 빨갛게 익어가고 부석사 단풍이 물들면 영주의 축제 아닌 축제도 계속된다. 요즘처럼 경기가 어려울 때 박제가의 시장과 우물처럼 주머니 끈도 살짝 푸는 게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아무리 어렵다고 해서 있는 우물마저 마르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살림을 아끼고 긴축재정을 이어 나가는 것도 미덕이지만 박제가의 말처럼 아름다운 소비를 통해 우리 고장의 우물을 잘 지키는 것도 의미가 있다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