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가(宗家)의 마루 ‘宗’자는 ‘우두머리’, ‘꼭대기’, ‘으뜸’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그래서 종교(宗敎), 종묘(宗廟) 등에서 쓰일 뿐만 아니라 교종(敎宗)의 ‘宗’자는 황제를 뜻하기도 한다. 종가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한 문중에서 맏이와 그 식구들이 사는 집’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족보상 성과 본이 같은 집안의 큰아들 즉, 장남으로 이어진 집을 말한다. 그러나 종가는 그냥 맏아들로 몇 대 내려간다고 가볍게 붙여지는 호칭은 아니다. 여러 가지 까다로운 요건을 갖추어야 비로소 종가로 호칭 될 수 있는 것이다.
종가의 요건으로는 우선 누구나가 인정하는 훌륭한 인물 불천위(不遷位, 영원히 제사를 모시는 인물)가 있어야 하고, 불천위 신주를 모시는 사당이 있을 것이며, 사당을 지키는 수호 주체인 재실 등의 공간이 또한 따로 있어야 한다. 그리고 사당을 수호하는 맏아들로 이어온 직계후손 즉 종손(宗孫)이 따라야 하며, 나아가 종손을 외곽에서 보호해 줄 지손(支孫)들로 구성된 단체 즉, 문중(門中)이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종가를 이루는 조상, 사당, 큰집, 종손, 지손, 문중으로 구성된 유기체가 모두 갖춰져야 한다는 뜻이다. 이 중에서 조상, 사당, 종택은 하드웨어 격이고, 종손, 지손, 문중은 소프트웨어에 해당하는 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중 어느 하나가 기울어도 반듯한 종가로 대접받을 수가 없다. 이러한 구성 요건 속에서도 시스템 작동 또한 원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불천위 종가는 지속적으로 존립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 중심에는 종손과 종부(宗婦)의 역할이 요구됨은 물론이다.
불천위는 나라의 명을 받은 국불천(國不遷)과 향촌 유림(儒林)에서 받드는 향불천(鄕不遷) 혹은 유불천(儒不遷) 그리고 사사문중에서 지정한 사불천(私不遷) 등이 있는데, 당연히 나라에서 하사한 국불천위를 가장 큰 영광으로 여긴다. 국불천은 주로 벼슬보다는 도학(道學)이 높아 나라로부터 도학군자(道學君子)라고 인정받은 사람에게만 불천위를 하사하게 된다. 따라서 도학군자로 지정된 문중에서는 이를 대단한 가문(家門)의 영예로 생각하고 성대하게 제사를 올린다.
타 문중에서는 그 불천위 제사에 초청받는 것만으로도 가문의 영광으로 여긴다고 한다. 조선조 27 국왕 중에도 절반인 13 국왕만 국불천으로 받들고 있을 정도이니 짐작이 갈만하다. 일반적으로 다른 불천위 종가의 맏이 어른을 종손이라 부르는데, 국불천위를 모시는 종가의 종손을 특별히 종군(宗中君主의 약어)으로 칭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나라에서 시호(諡號)를 내리거나 불천위 옹립 여론이 일어나면, 향촌의 동의와 유림들의 공론과정을 통해 별묘(別廟)라는 추모의 집을 짓고 고유(告由)를 하게 된다. 별묘 안에 감실(龕室)이라는 공간을 만들어 이곳에 해당자의 신주(神主)를 모시게 되어 있다. 신주는 살아계신 듯 경건하고 신성하게 보호된다. 이후 자손들은 정해진 날에 추모 의식을 행하고 찾아오는 손님을 접대하게 된다.
이른바 「봉제사(奉祭祀) 접빈객(接賓客)」이다. 이는 종가의 중요한 임무로 치부(置簿)되고, 이를 전담하는 사람이 종손이고 그의 아내를 종부라고 부른다. 즉, 적손으로 내려오는 손자가 종손이고 종손을 지원하는 자손이 지손이다.
종손의 집은 다른 집과는 다르게 솟을대문으로 짓는다. 아무 집이나 솟을대문을 올릴 수가 없으므로 솟을대문으로 지어진 집을 종택(宗宅)으로 보면 거의 틀림이 없다. 종택은 가문 탄생의 상징이며, 자손 모두의 의지와 씨족 문화의 중심체 역할을 한다. 그래서 종가가 잘되면 온 문중이 든든하다고 하지만, 종손이 허튼 걸음을 걷게 되면 ‘종갓집이 그 지경이니 온 집안이 다 글렀다’고 손가락질을 받게 되는 것이다.
연구 자료에 의하면 불천위 종가 수는 경북(187)이 단연 전국 최고이며, 경북에서는 안동(50), 봉화(17), 영주(15), 상주(15), 성주(11), 영천(10) 순이라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