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김신중의 영주 톺아보기 [84] ‘단양진폐소(丹陽陳弊疏)’를 읽어야 사람이 보인다 < 김신중의 영주 톺아보기 < 오피니언 < 큐레이션기사 - 영주시민신문

상단영역

뉴스Q

기사검색

본문영역

김신중의 영주 톺아보기

김신중 시인

김신중의 영주 톺아보기 [84] ‘단양진폐소(丹陽陳弊疏)’를 읽어야 사람이 보인다

2023. 09. 14 by 영주시민신문

단양진폐소는 금계(錦溪) 황준량(黃俊良) 선생이 지은 상소문으로 조선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명 상소문이다. 단양 군민을 사랑하는 마음을 잣대로 한다면 모든 상소문 중에 단연 으뜸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단양진폐소는 눈물이 없이는 읽을 수 없다. 애절한 마음이 없이도 읽어 내려갈 수가 없다. 상소문을 읽는 내내 오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에도 이런 목민관이 고을마다 수두룩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금계 황준량 선생은 풍기 사람으로 스물네 살에 문과 급제한 뒤 단양군수, 성주 목사를 지냈으며, 퇴계 선생의 제자이다. 퇴계는 스승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제자를 애도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행장(行狀)을 지었다. “운명하던 날에 이르러서는 염에 쓸 이불과 속옷 등이 없어서 베를 빌려 염을 했는데 의류가 관을 채우지 못했다.”라고 행장에서 썼으니 선생의 청빈함을 더 이상 다른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한 집이 백 호의 부역을 부담하고 한 장정이 백 사람의 임무를 감당하게 되어 힘껏 밭 갈고 재빨리 농사지어도 제 몸을 꾸려나갈 희망조차 없고, 돈을 빌리고 밭을 세내어도 세금과 부역도 감당하지 못하니, 기름 끓는 듯 애를 태우며 목마른 붕어가 모인 듯하여 대궐에 호소할 길이 없어서 애달프게 하늘에 하소연하니 이 백성들에게 무슨 죄가 있기에 이처럼 고통스럽게 합니까? 아, 새도 남쪽 가지에 둥지를 틀고 이리도 옛 언덕을 향하여 머리를 돌린다고 하는데, 고향을 떠나기 싫어하는 것은 사람이 더욱 심한 것입니다.

전지와 마을을 버리고서 이슬을 맞으며 깊은 산속 한데서 살다가 승냥이나 살무사에게 죽더라도 돌아오려 하지 않으니 유독 인정이 없어서 그런 것이겠습니까? 살을 도려내고 골수를 우려내며 거북 등처럼 털을 벗겨 못하는 짓이 없어서 명령이 성화같이 절박하고 참혹한 형벌을 가하여 조금도 편안히 살 수가 없으므로 고향을 생각하지 않고 서로 이어 도망가서 마침내 온 고을이 폐허가 되어 버렸습니다.”

선생의 상소문은 백성을 사랑하는 애절한 마음이 글자 한 자 한 자에 들어 있어 몇 마디로 요약을 하거나 한 문구만을 따로 떼어서 읽을 수가 없다. 눈물을 먹물 삼아 온 힘을 다해 꾹꾹 눌러썼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어서 함부로 읽어 내려갈 수도 없다. 목민관으로서 백성들의 생활을 세심하게 살피고 그들과 함께 동고동락하지 않았다면 이런 상소문을 쓸 수가 없었을 것이다. 선생의 상소문은 삶에서 묻어나온 눈물의 흔적이어서 더욱 호소력이 있다.

선생은 상소문에서 상책을 말하고 상책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차책(次策)과 하책(下策)을 제시했다. 상소문을 읽은 명종은 가장 높은 요구인 상책을 받으면서 단양에 조세와 부역을 10년 동안 모두 감면해 주라고 명했다. 이로써 과중한 공물을 바치느라 산속으로 숨어 들어갔던 백성들이 비로소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퇴계는 행장에서 “공의 정성이 하늘을 감격하게 한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예전에 없던 은전(恩典)을 얻을 수 있었겠는가.” 했다.

선생은 단양의 피폐함을 말하기 전에 “이곳과 가까운 곳에서 신이 살았기에 일찍부터 피폐한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라고 했다. 이웃한 풍기에 살았음을 밝힌 것이다. 그러면서 삼면이 산으로 막혀 있는 단양의 지세를 말하고 백성들은 우거진 잡초와 험한 바위 사이에 있는 마을에 살면서 나무껍질로 기와를 대신하고 띠풀을 엮어 벽을 만들어 살고 있다고 단양 사람들의 척박한 삶을 임금에게 눈물로 호소하고 있다.

금계 선생의 상소문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옷깃을 여민다. 조선시대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도 목민관의 마음이나 자세는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살피고 사랑하고 해결해주고 가끔은 함께 눈물을 흘릴 줄도 아는 목민관이야말로 어떤 시대나 상황에서도 엄청난 호소력을 가지는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영주 사람이라면 금계 선생의 ‘단양진폐소’를 꼭 한번 처음부터 끝까지 한 글자 한 글자 놓치지 말고 가슴을 꾹꾹 눌러 가며 읽어봤으면 좋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