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문화관광재단에서 ‘2023 효자손 원탁회의’를 시, 읍면 단위로 나누어서 2회에 걸쳐 개최하였다. 참가자들은 우리가 바라는 지역의 모습, 방해되는 것과 도움 되는 것, 아이디어 도출 순으로 회의를 진행했다. 먼저 ‘공생 공존하는 삶’, ‘다양한 세대가 소외와 갈등 없이 공존하는 따듯한 마을’, ‘변화를 받아들이고 배려하는 소통하는 문화도시’. ‘영주스러움을 누리고 이어갈 수 있는 마을’ 등 우리가 바라는 지역의 모습이 거론됐다.
이어서 시민이 바라는 지역이 되기까지 현재 ‘방해되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도움 되는 것’은 어떠한 것이 있을지를 구체적으로 탐색했다. 마지막으로 토론을 통해 나온 의제들을 종합해 각자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는 것으로 원탁회의가 마무리됐다. 회의에 참석한 시민들은 하나같이 “직접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해줘서 감사하다.” 했고 주최 측에서도 훈훈한 분위기에서 시민들의 다양한 요구를 직접 들을 수가 있었다.
효자손은 대나무의 끝을 손가락처럼 구부려 손이 닿지 않는 부위를 긁을 수 있도록 만든 물건이다. 효자손은 없는 집이 없을 정도로 우리 생활 가까이에 있다. 머리맡이나 손이 닿는 곳에 가져다 놓고 등이 가려우면 등이 시원할 때까지 슬슬 긁고 있으면 세상 부러울 게 없다. 아마 문화재단에서도 이런 의미로 효자손 명칭을 써서 시민들의 가려운 등을 긁어준다는 의미로 사용했으니 그 아이디어가 기발하다. 사실 문화에 목이 마르고 뭔가 신통찮은 것은 많은데 말할 데가 없어서 답답했던 사람들에게 소통의 효자손이 절실했다.
효자손이 바로 우리 곁에 있듯이 문화도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한가운데에 있다. 효자손 원탁회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을 중시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문화는 우리의 생활 양식이기 때문에 몇몇 사람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다. 문화는 축적돼 내려오는 전통이 있기에 안목이 있는 한두 사람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인 삶을 살아가는 개인이나 가정, 마을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생각하면 예전에는 마을마다 마을 고유의 문화가 있었다. 마을마다 풍물패가 있어서 마을의 행사를 주도했다. 호미씻이가 표준말인 풋굿도 있다. 세 벌 김매기가 끝나면 호미를 씻고 음력 7월쯤 날을 잡아 술과 음식을 먹고 하루를 즐기는 날이었다. 풋굿이 가까이 오면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도랑도 치고 길도 정리하면서 길옆에 풀도 벤다. 샘을 치기도 했는데 공동 우물의 물을 퍼내고 우물 밑을 깨끗하게 정리해서 맑은 물을 마시게 했다.
모내기할 때도 마을의 노동요가 있어 모를 심고 노래를 부르면서 아픈 허리를 달랠 수 있었다. 대보름날에는 쥐불놀이와 연날리기를 하면서 즐거웠으며, 정초가 되면 마을마다 지신밟기를 집집이 다니면서 각 가정의 평안과 복을 빌어 주었다. 아직도 “아들을 낳게 되면 대통령이 나오소.” 하는 앞소리가 귀에 선하게 들리는 것 같다. 꽹과리를 치며 각 가정을 돌면서 그 가정이 소망하는 바를 빌어주던 앞소리꾼의 기막힌 음성을 잊지 못하겠다.
고리타분할 수도 있는 옛 기억을 새삼 되살려 보는 것은 이런 문화가 마을에서 사라지고 없으니 다시 살리자고 하는 말은 아니다. 점점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현실에서 마을의 문화를 되살린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삶의 가장 기본 단위인 마을을 무시하고 문화를 말하는 것은 어쩌면 본질을 외면하는 것과 같다. 이제는 마을의 개념이나 범위를 달리해서라도 마을 문화를 생각할 때가 되었다.
어쨌든지 효자손 원탁회의에서 마을에 초점을 맞춘 것은 정말이지 의미가 있다. 문화도시는 몇 명의 리더들이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도시의 기본 단위가 마을이듯이 문화도시의 기본 단위도 마을 문화에서 출발해야 한다. 드디어 영주가 마을 문화를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인다. 삶의 영주스러움도 이런 마을 문화가 마을마다 조금씩 꽃이 필 때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