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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호의 문화확대경

배용호 (전 영주교육장)

배용호의 문화확대경 [265] 영주 교육의 근간을 이룬, 영주향교(榮州鄕校)

2023. 08. 24 by 영주시민신문

향교는 공자를 비롯한 여러 성현을 제향하고, 지방 인재 양성과 풍속 교화의 연원 역할을 견지(堅持)하면서 신교육 태동의 모태 역할까지 맡아왔던 관립 교육기관이다. 그러기에 조선조 전국의 부・군・현에는 반드시 하나씩 향교가 배치되어 있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지금도 전국에는 234개의 향교가 남아 그 본질을 이어나가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영주향교는 영주 시가지 뒤편 철담산 중턱에 꼿꼿이 앉아 시가지를 내려다보고 있는 형국이다. 현재로 보면 영주여자고등학교 교정 뒤편에 해당한다.

1371년(고려 공민왕 20년) 영주군수 하륜(河崙)이 창건하였고, 1433년 군수 반저(潘渚)가 중수하고 하마비(下馬碑)를 세운 것으로 기록에 전한다. 하지만, 취사[李汝馪]의 『영주지』에는 영주향교를 창건(創建)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으나, 학사[金應祖]의 『영주지』에는 하륜 균수가 영주향교를 이건(移建)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정도전이 지은 염의 정운경(鄭云敬, 1305~1366)의 행장에 의하면 ‘염의공이 10세 때 영주향교에 입학했다’는 기록이 보여 적어도 1315년 이전에 이미 영주향교가 창건되어 있었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이후 향교는 군수 이희득(李希得), 군수 최상관(崔尙觀) 등 여러 차례 중수되면서 오늘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편, 1597년에는 명나라 장수 아국기(芽國器)가 군사를 거느리고 영주를 지날 때 문묘에 알묘(謁廟)하고 향교 주위의 지형 지세를 극찬하였으나 백호(白虎)인 오른쪽 산맥이 낮고 인마(人馬)가 다니는 오솔길이 있어 결점이라 하여, 1635년에 진사 박종무(朴樅茂)가 유림과 협의하여 오솔길을 막고 낮은 산목을 흙으로 돋우었다는 특이한 기록도 보인다.

향교는 오늘날 중등교육 기구와 유사한 것으로 분류될 수 있는데, 특히, 영주향교는 영주의 중등학교 설립 모태를 이룬 향교로서 그 의미가 지대하다.

1900년대 초 전국 각지에서는 소학교라는 근대학교 설립이 경쟁적으로 일어났다. 이어 다음 단계 교급인 중등학교 설립 경쟁 또한, 만만찮게 전개되었는데, 영주향교에서도 영주의 중등학교 설립을 위한 기성회가 조직되었고, 이에 따라 1943년에는 향교 건물을 활용한 영주농업학교라는 근대학교가 영주 최초로 설립되게 되었다.

이 영주농업학교가 1946년에 영주농업중학교로 개편되고, 1953년에는 영주중학교와 영주농업고등학교로 학칙이 변경되면서 분가(分家)하였다.

1952년에는 영주여자중학교가 개교되었고, 이들의 졸업과 함께 1954년 영주여자고등학교가 설립되면서 영주향교는 영주의 중등학교를 모두 완성할 수 있었다. 1982년에는 영주여자중학교가 분리되어 가흥동으로 이전하면서 영주향교에는 영주여자고등학교만 오롯이 자리하게 된다.

다시 정리하면, 영주향교에서 1943년 설립된 영주농업학교가 3년 뒤 영주농업중학교로 개편되면서 공립 중등학교로 정식 인가를 받았고, 10년 뒤 영주중학교와 영주농업고등학교로 분리 개편되면서 휴천동과 가흥동 새 교사로 각각 이전되어 영주향교에는 영주여자중‧고등학교가 남아 있었다.

다시 30년 가량 지난 뒤 영주여자중학교가 새 건물을 지어 가흥동으로 살림을 난 이후부터 영주향교는 영주여자고등학교를 품고 40년을 지내오게 되었다.

이렇듯 시가지 뒤편에 앉아 영주 인재 양성의 주최자 역할을 묵묵히 맡아 온 곳이 영주향교이다. 창건 이후 600년 동안은 지방 인재를 직접 양성하다가, 근대 교육기관이 등장하자 이들의 설립 토대를 마련해주고는 조용히 물러앉아 지금껏 거의 100여 년을 교육의 뒷방에서 자신이 돌보고 있었던 이들 근‧현대 교육기관에게 묵묵히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즉, 영주향교는 약 700여 년간 한시도 영주의 교육 현장을 책임진 진정한 교육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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