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배용호의 문화확대경 [264] 만주의 독립운동(獨立運動) < 배용호의 문화확대경 < 오피니언 < 큐레이션기사 - 영주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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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호의 문화확대경

배용호의 문화확대경 [264] 만주의 독립운동(獨立運動)

2023. 08. 17 by 영주시민신문

배용호의 (전 영주교육장)

민족 독립운동의 중심축인 대한광복단 활동이 1913년 풍기에서 조직된 풍기광복단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2년 뒤 대구‧울산의 박상진·양제안·우재룡 지사와 합류되고, 다시 노백린·김좌진 등이 가담하면서 더욱 탄탄한 조직으로 성장하였다. 대한광복단의 초기 노선은 군대를 편성하여 정면(무력)으로 국권을 회복하겠다는 게 목표였다. 그래서 군자금을 마련하고 친일파를 처단했다.

이런 사업이 발각되면서 1918년 총사령 박상진을 비롯한 37명이 대거 체포되어 조직이 사달 났다. 이때 체포를 피한 단원들은 만주로 건너가 암살단·의열단(義烈團)에 가담하여 독립운동을 계속하였다. 한반도 내 독립운동의 거점이 만주(간도)로 옮겨간 것이다. 그리하여 일제강점기의 만주는 사실상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반도 내 기미 독립선언에 앞서, 김좌진, 김동삼, 김규식, 이동녕 등 민족인사 39명이 만주에서 채택한 「무오독립선언서」가 그 대표적 활동 중의 하나이다.

만주의 독립운동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실제보다 저평가되어 있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승리한 일제가 만주라고 눈감아주지 않았을 이역만리 만주 땅에서 얼마되지 않는 인원으로 반도 전체의 독립운동을 감당하다시피한 내용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지금도 그들 중 상당수는 아직 「독립운동가」로 예우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1918년 11월부터 용정의 배동식 목사와 선교사들은 일제 침략을 규탄하고 신도들의 독립운동을 암암리에 지지하면서 민족 자주독립 정신을 심어주었다. 특히 캐나다 선교사가 운영한 제창병원(濟昌病院)은 초기 북간도 독립운동의 총본영이기도 했다 한다. 연길도윤공서(간민회 본부) 박동원의 집에서는 이동식 등 항일 독립운동자 33명이 광복단을 조직하고 비밀회의를 가졌다.

서울의 3·1독립선언과 동시 거사를 위해 은진중학(恩眞中學) 지하실에서 독립선언서를 인쇄하고, 간도 각지 동포들은 태극기를 만드는 등 빈틈없는 준비를 갖추었다. 그러나 3.1 독립선언 소식이 3월 7일 밤에야 북간도에 전달되었다. 그래서 간도 시위는 일주일 뒤 3월 13일로 날짜를 잡고 중화민국(中華民國) 외교부에 통첩을 발송했다.

3월 13일 만주 독립운동의 첫 봉화는 북간도 용정촌에서 올려졌다. 이날 운집한 군중은 9,000여 명쯤 되었다고 한다. 이날 시가행진 중 17명이 순국하고 30여 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사흘 뒤 이들 순국자 장례식장에 모인 군중만도 수천여 명이었다고 한다.

당시 용정촌 정착 동포가 불과 800여 호에 불과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실로 엄청난 숫자라고 할 수 있다. 이 독립 만세운동 뒤를 이어, 서‧북간도와 시베리아 등지에서 일어난 집회는 도합 47개 지역에서 100회 이상이었으며, 참가 인원은 약 15,000여 명이라고 일경이 집계하고 있다.

특히, 1919년 9월에는 혼춘의 여성 동포 200여 명이 ‘애국부인회’를 조직했다. 여성도 있는 힘을 다하여 독립운동을 후원하고, 여성교육과 여권확장을 기도하며, 전쟁 부상병을 구호함을 목적으로 삼았다. 그중 몇몇은 손가락을 자르는 ‘단지동맹(斷指同盟)’까지 하면서 애국심을 나타내었다. 또한, 앞다투어 머리칼을 잘라 달비[月子]를 만들고, 지녔던 패물을 팔아 독립자금을 냈다고 한다.

만주의 서간도에서는 경학사, 한족회, 부민단 등이 결성되고, 북간도에서는 서전서숙‧명동학교 등 민족학교를 비롯한 중광단, 정의단, 북로군정서 등 군사조직이 결성되었다. 이때 신흥무관학교가 배출한 약 3,500여 명의 독립군 장교가 봉오동과 청산리전투의 승리 주역이었다고 한다.

이 전투에서 참패한 일제는 그 보복으로 독립군 기지촌에 있는 무고한 민간인 3,500여 명을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참살했다. 이른바 「경신참변」이다. 하여, 이곳 간도(만주)는 우리 민족사상 가장 애환이 많은 지역으로 꼽기도 한다. 그런데 정작, 이런 내용들은 우리 교과서 어느 곳에도 찾아볼 수가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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