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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중의 영주 톺아보기 [77] 말의 덧없음

2023. 07. 20 by 영주시민신문

연일 장맛비가 내리고 있다. 하늘에 구멍이 뚫려도 보통 뚫린 게 아니다. 지금까지 영주는 산맥으로 둘러싸여 큰비가 잘 지나가곤 했는데 이번만큼은 비가 오는 품이 예사롭지 않다. 피해도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영주지역 어디랄 것도 없이 산사태가 나서 토사가 도로에 넘치고 농경지가 침수되어 피해가 실로 어마어마하다. 산사태로 집에 들어갈 수 없는 분들도 꽤 있다. 매스컴에 연일 영주, 봉화, 예천이 오르내릴 만큼 피해가 엄청나다. 무엇보다도 이번 폭우 때문에 인명 피해가 너무 심해서 안타까운 마음 금할 수가 없다.

말은 힘이 있어서 세상을 변화시키기도 하지만 정말 말이 덧없을 때가 있다.

요즘 같은 때가 그렇다. 물난리가 나서 걱정으로 잠 못 들며 밤을 지새우는데 말이 무슨 위로가 될 수 있을까. 이럴 때 말을 잘못 건드리면 쓸데없이 그것은 쓰레기 같은 말로 전락해 버린다.

말로 살아가는 게 얼마나 어렵고 위험한지를 새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말은 존재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이름도 없이 피고 진다. 이름도 없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말의 덧없음을 꽃에 비유하고 있다.

갑자기 괴테의 「파우스트」가 생각난다. 파우스트는 요한복음에 있는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에서 말씀(logos)을 번역한다. ‘태초에 뜻이 있었다, 태초에 힘이 있었다.’ 번역하다가 결국은 ‘태초에 행동이 있었다.’라고 번역하고 만족해한다.

파우스트에는 여러 가지 깊이 있는 철학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이 말속에는 말에는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는 뜻이 들어 있다고 하겠다. 최고의 지성인 파우스트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행동의 의미를 하나하나 터득해 나가면서 태초에 행동이 있었음을 하나하나 증명해 가는 것이다.

한자 몽(夢)은 ‘덧없음’으로 풀이한다.

일장춘몽(一場春夢)은 헛된 영화(榮華)나 덧없는 일을 말한다. 노생지몽(盧生之夢)은 ​인생과 영화의 덧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꿈속에서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았는데 잠이 깨고 보니 모든 게 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말도 꿈과 비슷할 때가 많다. 화려하고 현란한 말은 꿈과 같다. 감언이설(甘言利說)처럼 남의 비위에 맞도록 꾸민 달콤한 말과 이로운 조건을 내세워 꾀는 말도 쭉정이와 같다. 이런 말을 듣다가 정신을 차려보면 꿈과 같이 덧없이 흘러가고 만다.

지난 며칠 동안에 내린 비는 정말 꿈과 같았다. 이게 현실인가 싶을 정도로 많은 비가 내렸다. 평생에 이런 비는 처음 본다는 분이 많았으니 어쩌면 며칠 동안 참혹한 꿈을 꾼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

꿈과 같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거기다가 한술 더 떠서 허무맹랑한 말을 덧붙이려니 덧없기가 이를 데 없다. 이런 꿈과 같은 때에 꿈과 같이 덧없는 말을 섞으려니 주저하는 마음도 든다. 허공에서 맴도는 말을 하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말과 행동은 수레의 두 바퀴와 같다.

어느 하나가 기울어지거나 없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말로서 생각하고 생각한 것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햄릿형, 돈키호테형을 말하는 사람이 많다. 햄릿형은 깊이 생각하는 사람을 말한다. 깊은 생각 속에는 말이 있는 것이다. 돈키호테는 생각보다는 먼저 행동으로 옮긴다. 풍차를 거인이라고 생각하고 무조건 창을 들고 풍차로 돌진하는 돈키호테다. 이렇게 보면 깊은 말을 곱씹으며 생각에만 몰두하는 것이나 깊은 생각 없이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것도 문제다. 두 가지가 균형을 이루어야 수레가 간다.

전국적으로 홍수가 할퀴고 간 자국이 어느 때보다 크다.

덧없는 말은 물과 같아서 쌓이고 쌓이다 보면 사람들의 마음을 할퀴게 된다. 지금처럼 말이 덧없을 때는 침묵이 금일 수도 있다. 어떤 경우라도 상처를 주는 말은 삼가자. 가루는 칠수록 고와지고 말은 할수록 거칠어진다. 말 많은 집은 장맛도 쓰다.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말에 대한 속담이다. 이번 폭우로 아픔을 당한 분들에게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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