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배용호의 문화확대경 [262] 정도전의 스승, 목은 이색(李穡) < 배용호의 문화확대경 < 오피니언 < 큐레이션기사 - 영주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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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호의 문화확대경

배용호의 문화확대경 [262] 정도전의 스승, 목은 이색(李穡)

2023. 07. 14 by 영주시민신문

배용호(전 영주교육장)

고려 3은(三隱)은 목은(牧隱) 이색(영덕), 포은(圃隱) 정몽주(,영천), 야은(冶隱) 길재(구미)를 일컫는 말이다. 그중에서도 목은 이색은, 정몽주, 길재를 포함해서 정도전, 이숭인, 권근 등 고려 말 대표적 성리학자를 다수 배출한 나라의 스승이었다. 특히, 정도전을 아꼈던 엄한 스승이었던 모양이다. 정도전이 북원과의 화친을 무너트리고 명나라에 사신 파견을 관철시키자 “그간 자만할까 봐 쉬 칭찬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정말로 잘했다”라는 말로 격려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후일 정치적 상황으로 스승과의 관계가 파경에 이르렀을 때 정도전은 이때를 생각하며 잠시 울컥했다고 한다.

이색(李穡, 1328∼1396)은 영해도호부 출신이다. 흔히 ‘호지마을’로 부르는 영해면 괴시리가 그의 탄생지이다. 바다가 가깝다지만, 상대산줄기가 슬쩍 해변을 가려주어서 풍파의 사나움이 맞닿지는 않는 부드러운 마을이다. 창수면 백청리에서 발원한 송천(松川)이 마을 앞을 휘돌아 관어대로 빠져나가면서 동해안에서는 드물게 너른 평야를 만들었다. ‘호지마을’은 그런 들녘 동편에 느긋이 앉은 전통마을이다. 최근 전국 8번째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되면서 「괴시민속마을」로 불리게 되었다.

「괴시민속마을」은 이미 800년 전 이색의 외가인 함창 김씨가 터 잡은 마을이었다. 그러다가 400년 후부터는 영양 남씨 단일 문중의 역사·문화가 전승되고 있는 동해안 대표적 양반촌이 되었다.

이색이 태어난 고려 후기는 원의 속국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는 시대였다. 그의 아버지 가정(稼亭) 이곡(李穀)은 『죽부인전』 작가로 널리 알려졌지만, 36세 때 원나라 과거에 2등으로 합격한 수재였다. 아들 이색도 14살의 이른 나이성균시에 합격하고 아버지가 원에서 중서사전부(中瑞司典簿)가 되자 조관(朝官)의 아들로 원나라 국자감의 생원이 되어 그곳에 있던 이제현(李齊賢)에게 주자·성리학을 익혔다. 돌아와 25살에 고려 과거에 합격했으며, 이듬해 정동행성(征東行省) 향시(鄕試)에 1등으로 합격했다. 다시 서장관(書狀官)으로 원에 가 회시(會試)·전시(殿試)에 합격하여 이름을 떨쳤다. 이때, 원나라 황제에게 건의하여 고려 처녀 징발을 중지하게 하였다. 그는 신흥사대부로, 원나라 과거에서 실력을 인정받음으로써 고려의 관직도 순탄하였다. 27세 때 공민왕의 개혁정치에 합류하여 개혁을 실천하고자 하였다. 이색은 자신이 원에서 익힌 선진 외래사상(주자·성리학)을 수용하고, 이를 바탕삼아 고려 말 개혁정치를 전개했다. 1365년 신돈의 개혁정치가 본격화되면서 그는 교육·과거 등에서 개혁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40세에 성균관 대사성이 되어 학문을 부흥시키고 학문적 능력을 바탕으로 성장하는 유신(儒臣)들을 길러냈다.

1388년 위화도회군이 일어나자 문하시중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고려왕조 존립을 전제로 개혁정치를 단행하고자 했던 이색은 급격한 사전개혁(私田改革) 등을 반대하면서 사실상 역성혁명의 반대편에 섰다. 이성계로서는 당시 나라에서 최고 존경을 받던 이색이 자신의 건국에 동참해주기를 바랐는데, 이색은 “차라리 오늘 버림을 받을지언정 후일 어리석은 비웃음을 받지 않겠다”며 선비의 지조를 지켜 망국의 대부로 귀양길에 올랐다. 석방된 후에도 산천을 유람하는 등 조용히 지내다가 1396년 여주 신륵사(神勒寺)로 가는 길에 69세의 생애를 거두었다.

「괴시민속마을」 중간으로 난 경사진 산길을 오르면 협소한 골짜기가 나오는데, 흡사 동천(洞天) 모양을 하고 있다. 안으로 제법 넓은 공간 맨 위에 목은 이색의 집터가 있다. 그리고 그가 고향 그리며 썼다는 『관어대소부(觀魚臺小賦)』 시비도 나란히 서서 지나간 600년을 묵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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