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문학촌에 가면 설레 이야기길 안내도가 있다. 첫 번째 ‘들병이들 넘어오는 눈웃음 길’에서 시작해서 열여섯 번째 ‘맹꽁이 우는 덕만이 길’까지 김유정 소설과 관련이 있는 길을 안내하는 지도였다. 이름만 들어봐도 왠지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춘호 처가 맨발로 더덕 캐던 비탈길, 도련님이 이쁜이와 만나던 수작골 길, 점순이가 나를 꼬시던 동백숲 길’ 등 듣기만 해도 마음을 풀어헤치게 하는 힘이 있다.
그냥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하면서 나열에 그쳤으면 딱딱해서 쳐다보지도 않았을 것인데 소설에 나오는 길 이름을 붙여 놓으니 재미도 있고 공감도 간다. 이것이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힘이다. 그래서 요즘엔 이야기, 스토리, 스토리텔링이란 말이 유행하는 것이다. 이야기나 스토리가 줄거리를 가지고 있는 글이라고 한다면 스토리텔링은 이런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을 말한다. 어디든지 이야기는 있으니 결국은 스토리텔링이 중요하다고 하겠다.
이야기에는 세 가지의 욕망이 들어 있다고 한다. 이 세 가지 욕망이 얽히면서 우리는 이야기에 점점 빠져든다. 먼저 이야기를 지은 사람의 욕망이 있다. 심청전을 만든 사람은 효(孝)가 실현되는 현실사회를 꿈꾸었다. 등장인물의 욕망도 있다. 심청은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고 싶었다. 책을 읽는 독자의 욕망도 있다. 심청전을 읽으면서 ‘나도 심청이와 같이 효도해야겠다.’ 하는 욕망이 이리저리 얽혀 있다.
이야기에는 이런 세 가지 욕망이 얼기설기 얽혀 있기에 흥미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런 이야기의 욕망을 재미있고 흥미롭게 잘 전달하는 방법이 스토리텔링이다. 온 산천에 널려 있는 것이 이야기라고 하면 이야기보다 더 중요한 것이 스토리텔링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영주는 이야기의 보고(寶庫)다. 영주만큼 많은 이야기를 가진 곳은 그리 많지 않다. 수많은 이야기의 욕망이 영주 곳곳에 널려 있다.
욕망이란 말이 귀에 거슬린다면 이루고 싶은 세상이란 말로 풀이해도 좋을 것 같다. 영주에는 의상대사가 이루고 싶었던 극락정토의 세상이 있다. 회헌 선생은 유도(儒道)로 통치되는 세상을 이루고 싶었다. 삼봉, 신재, 퇴계 선생이 이루어내고 싶은 세상이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금성대군과 그를 따랐던 분들이 이루고 싶었던 세상도 있다. 지금 이곳을 살아가는 영주 사람의 욕망도 여기저기 있으니 이야기 천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까 영주에는 지금까지 축적된 많은 이야기에다가 잘 살고 싶어서 애쓰는 영주 사람들의 욕망이 있다. 영주를 찾아오는 분들이 영주에서 보고 먹고 즐기고 싶은 욕망이 있다. 이 세 가지 욕망의 숲에서 우리는 이런 욕망을 스토리텔링으로 잘 전달하고 있는지, 영주를 찾는 분들의 욕망을 잘 헤아리면서 그들의 오감을 만족시키고 있는지를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정책은 이런 요소를 잘 이해하고 고민해서 결정 돼야 한다.
다니엘 핑크는 향후 소비자의 구매 결정은 이성적인 이유보다 감성적 이유로 이루어지며 소비자는 실제 상품보다 상품에 담겨 있는 이야기, 감성, 가치 등을 구매할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영주의 이야기, 영주의 감성, 영주의 가치를 구매할 수 있도록 우리는 스토리텔링을 만들어야 한다. 이야기가 일련의 구조를 가지고 끈끈하게 이어지듯이 영주의 이야기도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잘 어우러지는 구조를 가진 스토리텔링이 돼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모든 욕망은 문화의 옷을 입지 않을 수가 없다. 이루고 싶은 세상은 문화의 옷을 입고서야 비로소 사람들에게 감성적으로 다가간다. 가치도 그냥 설명하면 정말이지 추상적인 용어를 벗어날 수가 없지만 문화의 옷을 입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가치는 가슴에 각인되고 가지고 싶은 아름다운 것으로 변형된다. 그러니 모든 문제는 여기서 풀어나가야 한다. 이야기에서 벗어나는 생뚱맞은 정책은 좋은 아이디어는 될지 몰라도 창조적인 힘을 잃을 가능성이 있다. 정말이지 고민하며 살펴볼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