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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중의 영주 톺아보기 [71] 말은 힘이다

2023. 06. 09 by 영주시민신문

글을 쓰면서 언어를 자주 대하다 보니 말만큼 신기한 것이 없다. 소통하는 도구를 넘어서서 말은 빛이 되어 우리의 존재를 밝혀주고 어두운 마음에 따뜻한 온기를 전달해 주기도 한다. 옛 고전이나 경전에도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에 대한 경계가 곳곳에 나오고, 말을 실수해서 낭패를 본 예화들도 즐비하다. 실제로 주변에서 보면 말 때문에 마음이 닫히고 마음고생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생각할수록 어려운 게 말인 것만은 틀림없다.

사람들이 임종할 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손’이라고 들은 적이 있다. 마지막 온몸의 힘을 다해서 손을 내밀어 가족의 손을 만져보자는 것이다. 정현종 시인은 시에서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했다. 사람들은 모두 하나의 섬이며 그렇게 고독하게 살아가고 있다. 어떤 작가는 그 섬과 섬을 이어주는 교량 역할을 하는 것이 말이라고 했다. 임종할 때 내미는 손과 같이 말은 사람들을 서로 이어주는 정말 귀중한 도구가 아닐 수 없다.

김윤나는 『말그릇』에서 “말은 몇 초 만에 세상 밖으로 나오나 그 한마디 한마디에는 평생의 경험이 담겨 있다.” 하면서 “말은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할 만큼 힘이 세다. 게다가 수명은 어찌나 긴지. 말의 질긴 생명력을 실감하곤 한다.” 했다. 참으로 공감이 가는 말이다. 말 한마디 때문에 평생을 아프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말 한마디에 힘을 얻어서 새롭게 거듭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우리 주변에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널빤지에 못이 박히면 쉽게 빠지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못이 빠지기 위해서는 널빤지가 썩어 문드러져야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가슴에 박힌 말의 못도 쉽게 빠지지 않는다. 어쩌면 말을 들은 사람의 가슴이 썩어 문드러져야 그 말이 빠져나가니 말의 생명력이 얼마나 끈질긴지 알 것 같기도 하다. 이기주 작가는 “말과 글은 머리에만 남겨지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새겨진다.” 했다. 참 설득력이 있다.

훔볼트는 언어를 에르곤(ergon)이 아니라 에네르게이아(energeia)라고 했다. 에르곤이 ‘이뤄진 것’이라고 하다면 에네르게이아는 ‘이뤄내는 힘’을 말한다. 말은 그냥 의사만 전달하는 단순한 것이 아니라 인간을 바꾸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어려운 말을 쓰지 않더라도 말이 사람을 바꾸는 힘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많이 경험해서 알고 있다. 그렇게 보면 말을 아무 생각 없이 입 밖으로 툭툭 던지는 것만큼 무책임한 것은 없다.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인 오프라 윈프리의 어린 시절은 무척 불행했다. 사생아로 태어나 할머니에게 매질을 당하면서 살았다. 성폭행을 당해 열네 살에 미혼모가 되었고, 마약과 알코올로 불행한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런 가운데서도 오프라 윈프리는 쉬지 않고 감사 일기를 썼다고 한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이러한 불행을 딛고 이길 수 있었던 것도 감사 일기를 쓴 덕분이라고 했다. 감사의 말은 이렇게 힘이 있는 것이다.

말은 마음에서 나온다. 사람들의 마음은 참 묘한 것이다. 연구에 의하면 동메달을 딴 선수가 은메달을 딴 선수보다 훨씬 기쁨이 크다는 것이다. 은메달을 딴 선수는 ‘조금만 더했더라면 금메달을 땄을 텐데.’라는 마음이 있어서 아쉬움이 크다는 것이다. 아마 이런 선수에게서 기쁨이나 감사의 말이 나올 수가 없다. 그러니 우리 삶을 바꾸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우리 마음을 바꾸고 마음에서 우러나는 말을 바꾸어야 한다.

김춘수는 ‘꽃을 위한 서시’에서 “눈시울에 젖어 드는 이 무명의 어둠에/ 추억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 나는 한밤내 운다.”고 했다. 어둠 속에서 아무리 불을 밝히고 울어도 꽃은 문을 열어 주지 않는다. 그냥 애간장만 태울 뿐이다. 그때 결과를 두려워하지 말고 “문 열어라.” 말을 해야 한다. 임종할 때 가시는 분이 손을 달라고 하듯이 애타는 마음이 말로 나가게 되면 나도 모르게 말에 파장이 생겨 공기를 두드리고 상대방 귀를 움직이는 것이다. 말은 그래서 힘이 있으며,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생명력을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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