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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중의 영주 톺아보기 [70] 아, 무섬 연가

2023. 06. 02 by 영주시민신문

지난주 뮤지컬 『무섬 연가』가 이틀에 걸쳐 공연되었다. 그동안 영주의 이야기를 직접 쓰고 연출했던 최대봉 작가가 지금까지 쌓인 역량을 다하여 무대에 올린 작품이라 기대도 컸고 감동도 더했다. 입향조 박수가 무섬에 터를 잡은 것으로 시작해서 은혜 갚은 권씨녀, 아도서숙과 일제의 탄압, 시인 조지훈의 사랑 이야기를 에피소드로 엮어서 무섬의 아름다운 풍광 속에 펼쳐 놓았다. 태생적으로 아름다움이 묻어날 수밖에 없는 뮤지컬이었다.

무대가 열리면서 이어서 작가가 지은 시 「무섬에 와서 보니」가 고요하게 객석을 덮는다. “무섬에 와서 보니 알겠네/ 메마른 눈짓이었을 뿐이었노라, 떠나보낸 시간들이/ 여기 켜켜이 모래로 쌓이고/ 물길이 되어 흐르고 있었다는 것을/둘 데도 놓을 데도 없이 정처 없는 마음자리일 때/ 하도 외로운 발길이 하릴없이 물가로 향할 때/ 여기/ 그리움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무섬에 와서 보니 알겠네”

무섬은 이미지다. 무섬은 말이 아니라 그림이다. 작가가 말한 것처럼 무섬은 느리고 고요하며 쓸쓸한 이미지로 흐른다. 그러기에 그 흐름은 움직임이 아니라 정지에 가까운 흐름이다. 무섬에 흐르는 내성천 강물은 흐르지만 흐르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무섬의 외나무다리가 돋보이는 것은 구불구불 움직이는 것 같으나 고즈넉하게 서 있기 때문이다. 무섬은 그렇게 우리에게 말이 아니라 이미지로 남아 있다.

이렇게 흐르는 무섬에 말을 얹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야기를 만들고 극적인 요소를 부여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일 수 있다. 모르긴 몰라도 작가 자신도 무섬의 고요한 이미지에 말을 얹어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 무척 고심이 컸을 것이라 짐작된다. 말을 얹는 순간 무섬의 이미지가 부서질 수 있다는 것을 작가의 감성으로 모를 리가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극적인 요소를 끝까지 끌고 가야하기 때문에 그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번에 공연된 『무섬 연가』는 작가의 시처럼 ‘보내버린 시간이 켜켜이 모래로 쌓여 물길이 되어 흐르는’ 무섬의 역사를 올렸다. 아득하게 흘러간 것을 되돌려서 무섬 강물에 다시 되돌리려 놓은 것이다.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왜놈 헌병들의 난동에 초점을 맞춰서 관객을 분노하게만 했다면 어땠을까. 마을 청년들을 굴비처럼 엮어서 외나무다리를 건너 어둠 속으로 사라지게 함으로써 무섬의 이미지로 되돌려놓았다.

“푸른 기와 이끼 낀 지붕 너머로/ 나즉히 흰구름은 피었다 지고/ 두리기둥 난간에 반만 숨은 색시의/ 초록 저고리 당홍치마 자락에/ 말 없는 슬픔이 쌓여오느니/ 십리라 푸른 강물은 휘돌아가는데/ 밟고 간 자취는 바람이 밀어 가고/ 방울 소리만 아련히/ 끊질 듯 끊질 듯 고운 뫼아리” 만죽제 고택이 배경이 됐다는 조지훈의 「별리(別離)」 앞부분이다. 이 시 또한 무섬의 고요한 그림에 슬픈 이별을 살짝 올렸다.

꽃은 피었다가 지고 물은 출렁거리다가 고요하게 흐른다. 사람 사는 세상도 마찬가지다. 격렬한 때가 있어 태풍이 몰려오는 것 같이 살아가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고요하게 살아가는 때가 있다. 『무섬 연가』는 이런 삶의 모습을 무섬에 얹어 놓았다. 그러한 삶은 ‘그리움으로 먼저 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뮤지컬의 제목에 ‘연가’를 붙였을 것이다. 배우들도 이러한 삶의 모습을 표현하려고 애쓰는 모습에서 감동이 배가되었다.

사물에 말을 얹으면 사물의 원형이 부서지듯이 무섬에 말을 얹으면 무섬의 이미지가 부서질 수 있다. 그만큼 『무섬 연가』를 무대에 올리는 일은 작가에게 부담이었을 것이다. 더욱이 에피소드를 연결하여 연가를 노래하는 것이 더욱 어려운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에피소드에는 이야기는 있지만 극적인 요소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요하며 쓸쓸한 무섬에 불이 나고 총성이 울리며 사랑이 꽃피니 참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래저래 무대를 준비하는 과정은 스트레스였지만 객석은 아름다움이었다. 참 어려운 예술의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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