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김신중의 영주 톺아보기 [69] 아직 영주에는 배가 열두 척 남았네 < 김신중의 영주 톺아보기 < 오피니언 < 큐레이션기사 - 영주시민신문

상단영역

뉴스Q

기사검색

본문영역

김신중의 영주 톺아보기

김신중 시인

김신중의 영주 톺아보기 [69] 아직 영주에는 배가 열두 척 남았네

2023. 05. 26 by 영주시민신문

지난 한 주간 영주는 경북안전체험관 유치 실패로 인한 분노와 패배감이 가득한 시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모든 시민이 한마음으로 열망해 온 터라 그 상실감이 그 어느 때보다 큰 것은 사실이었다. 특히 지역정치권의 정치력 부재에 대한 시민들의 질타는 매서울 정도로 컸으며, 기대가 컸던 탓인지 허탈감을 토하는 시민들이 많았다. 과거 공공기관을 유치하기 위해서 애썼으나 실패한 아픈 기억이 있어서 더더욱 분노를 표출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패배감, 상실감, 허탈감을 가지고 분노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특히 변방(邊方)을 운운하면서 영주의 자존심을 스스로 깎아내리는 말은 그야말로 자제할 필요가 있겠다. 영주는 경북 최북단에 있어서 변방으로 읽을 수도 있겠으나 경북의 최북단이지 우리나라의 최북단은 아니니 우리 자신을 그렇게까지 폄하할 것까지는 없다고 하겠다. 물론 변방 운운하는 것이 분노의 한 표현이라 그 마음에는 충분히 공감이 간다.

고대도시 아테네는 크게 아크로폴리스와 아고라로 나눠진다. 아크로폴리스는 고지대 바위 언덕에 세워진 신들의 집이었으며, 그 중심에 있는 파르테논은 신들의 사원이었다. 아크로폴리스 아래에는 아고라가 있었다. 아고라는 텅 비어 있어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였다. 사람들이 모이니 시장이 형성되고 극장이 세워지고 아고라 광장에서 시민들은 모여 민주주의를 꽃피웠다. 건물은 아크로폴리스가 훨씬 웅장하지만 파르테논 신전에서 도시의 모습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아고라에서 도시의 모습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영주도 이런 아테네의 상징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아테네를 규정하는 것은 파르테논 신전에 있는 신이 아니었다. 아고라 광장에서 물건을 사고팔면서 생계를 이어가는 보통 사람들에 의해서 아테네는 유지되었다. 극장에서 공연되는 그리스 비극을 보면서 울고 웃으면서 삶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던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서 아테네는 활력을 띠게 되었다. 아테네의 정치도 왕정에서 귀족정치로, 민주주의로 바뀜에 따라 아고라는 아테네의 중심에 있게 되었다.

비록 고대도시의 모습이기는 하지만 아테네 도시 구조는 나름 민주주의의 상징성을 띠게 된다. 광장이 있어야 하며, 시장이 있어야 하고, 사람들이 모여서 들끓어야 하면서 극장과 같은 문화가 존속해야 한다. 영주에서도 어떤 정책을 결정하고 추진할 때, 탁월한 안목이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방향이 결정된다면 충분히 광장으로 그 문제를 끌어들여 모든 시민이 공감하는 정책으로 내놔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영주의 본질을 다시 한번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아테네의 본질은 아크로폴리스와 아고라로 남아 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아고라의 모습도 다양하게 변하고 발전해 갔던 것이다. 영주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는 뿌리 깊은 정신 문화의 고향이다. 다른 도시에서는 흉내도 낼 수 없는 선비의 고장임은 분명하다. 소백산 자락에 수많은 문화 유적을 보유하면서 풍기 인삼, 영주 사과, 영주 한우 등 먹거리도 풍부하고 맛도 뛰어난 고장이다. 특히 영주에는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영주 사람들이 있다.

영주에는 영주만의 문화가 있고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영주 사람들이 있다. 볼거리도 있고 먹을거리도 있으며 즐길 거리도 있다. 경북안전체험관 유치에 실패한 아픔이 깊기는 하지만 여기에 머무를 수만은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앞으로 공공기관을 유치할 때 이러한 영주의 본질에 잘 맞는 기관을 유치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시민들의 의견을 아고라 광장으로 끌어내어 한 사람이라도 소중한 말을 귀담아듣는 것도 느리기는 하지만 함께 힘을 낼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원균에 의해 조선 수군이 전멸됐을 때 배가 열두 척밖에 없는 것을 보고 이순신은 “아직도 신에게는 열두 척의 배가 남았습니다.” 했다. 아직도 영주에는 눈 부릅뜬 영주 사람들이 열두 척이 아니라 수만 척이 남았음을 생각하면서 이제는 거뜬하게 상실감에서 벗어났으면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