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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중의 영주 톺아보기 [66] 우리는 이렇게 사람을 만난다

2023. 05. 04 by 영주시민신문

한 친구가 인연과 필연의 차이가 뭐냐고 물은 적이 있다. 처음에는 농담 삼아 비속어를 써서 대답을 던지고 생각해 보니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문제를 너무 성의 없이 대답했다는 자괴감이 들었다. 인연(因緣)과 필연(必然)을 얼핏 들으면 뒤의 ‘연’의 한자가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같지 않을뿐더러 그 의미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차이가 있다. 인연은 사람이 무엇과 맺어지는 관계이고 필연은 반드시 그렇게 되도록 돼 있는 일이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인연이라는 말이 들어가는 대중가요도 헤아릴 수 없이 많고 시절 인연이라는 노래가 유행하기도 했다. 인연은 불가(佛家)의 핵심 사상을 넘어 우리의 일상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말이 되었다. 인연에 대한 설명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 가장 흥미로운 것은 벼나 보리에 대하여 씨는 인(因)이요, 물, 흙, 온도 같은 것은 연(緣)이라는 것이다. 인연에 대한 쉬운 비유이면서 격조 있는 해석인 것 같다.

씨도 좋아야 하지만 씨 종에 따라 적당한 물, 흙, 온도가 있어야 한다. 어떤 때는 흙이 부드럽고 물기가 늘 있어야 하지만 반대로 모래밭과 같은 흙에서 잘 자라는 씨도 있는 것이다. 서늘한 온도에서 잘 자라는 식물이 있는가 하면 따뜻한 온도를 만나면 쑥쑥 자라는 것도 있다. 그렇게 보면 어떤 사람을 만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을 만나서 어떻게 씨가 되고 물이 되며 어떤 온도를 가지고 만나느냐는 것이 문제가 된다.

지금까지 참 많은 사람을 만났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니 이리저리 만난 사람들을 헤아려보면 수도 없이 많다. 지금 생각하면 한 사람도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그들은 내게 적당한 온도였고, 흙이었으며, 물을 공급해 주었다. 늘 따뜻하고 부드럽고 맑은 것만은 아니었지만 삶의 여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연이었다. 물론 씨였던 그들에게 나는 어떤 물과 온도, 흙이었을까를 생각하며 옷깃을 여미기도 한다.

꽤 오래전 일이기는 하지만 주말 점심 초대를 받았다. 허름한 시골집이었다. 집안에는 장식이랄 것도 없는 소박하지만 정갈한 집이었다. 그때 마침 마당에 걸인 한 분이 오셨다. 요즘은 거의 그런 사람이 보이지 않으나 그때만 해도 마을을 다니면서 먹을 것을 얻으러 다니는 사람이 꽤 많았다. “밥 한 그릇만 주십쇼.”하는 말에 주인은 밖에 나가서 그 사람의 손을 잡고 집안으로 모시고 들어오더니 아내에게 밥상을 차리라는 것이다. 찬은 별로 없었지만 따듯한 밥상을 받은 걸인은 황급한 마음으로 밥을 먹고 종종걸음으로 사라졌다. 걸인이 오면 밥 한 덩이를 던져 주듯 하던 시대였으니 정말이지 놀라운 장면이었다.

그 사람은 매일 오지는 않고 한 달에 한 번 정도 온다고 하면서, 저 사람도 도리는 아는 모양이라고 너털웃음을 웃었다. 점심 초대를 받은 손님을 의식한 처사나 말은 아니었다. 표정과 말이 본심 그대로였다. 나 같이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는 정말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 사람이 왔을 때 찬밥 한 덩이를 던져 주거나 집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행동했던 모습이 눈에 어른거려 견딜 수가 없었다.

그렇다. 인연은 무조건 좋은 만남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뜨거운 사랑만을 위해서 인연이 있는 것은 아니다. ‘시절 인연’의 가사처럼 “바람처럼 물처럼 가는 인연 잡지를 말고 오는 인연 막지 마세요. 때가 되면 찾아올 거야. 새로운 시절 인연”을 찾아서 떠나는 것만은 아니다. 인연은 지금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에게 흙과 온도와 물이 되어 주는 것이다. 따듯하거나 차고, 부드럽거나 딱딱한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는 그렇게 인연을 만들어 간다. 우리가 사는 곳에는 영원한 것도 없고 불변하는 것도 없다. 우리 자신이 씨앗이고 물이며 온도이고 바람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인연을 등나무처럼 마냥 뒤엉키고 서로 부딪히면서 살을 헤집는 것으로 알고 있다. 씨앗과 물과 바람과 온도는 서로 뒤엉키지 않고 자리를 비켜주면서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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