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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중의 영주 톺아보기 [64] 규슈올레로 돌아본 소백산자락길

2023. 04. 24 by 영주시민신문

규슈올레는 제주올레를 모델로 해서 일본 규슈에 만들어진 트레킹 코스다. 올레는 제주도 방언으로 ‘큰길에서 집까지 이어지는 좁은 길’이라는 뜻이다. 규슈올레는 21개 코스가 개발돼 있는데, 제주올레가 모든 길이 이어져 있는 반면에 규슈올레는 21개 코스가 연결돼 있지 않고 길의 특성에 따라 따로 떨어져 있다.

안내판에는 일본어, 한글, 영어로 규슈올레는 제주올레를 모델로 만들어졌으며, 사계절의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규슈의 역사와 음식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매력적인 걷기 코스라고 안내돼 있다. 규슈올레는 바로 이런 제주도 올레의 정신과 상징을 그대로 규슈에 옮겼다는 의미에서 우리나라 길 문화의 자부심을 느끼게 했다.

이번 답사는 규슈올레 중 19번째 미야마·기요미즈야마 코스로 후쿠오카현의 미야마시(市)와 기요미즈야마(淸水山)를 아우르는 코스다. 보리밭 사이사이에 있는 평범한 일본 전통 가옥을 지나면서 시작된 잔잔한 길은 왕대나무숲이 즐비한 길로 들어가면서 새로운 경험이 시작되었다. 대숲을 지나면 전망대에 이르기까지 가을이면 정말 아름다울 단풍 군락지가 이어진다.

일본 선사시대의 고분이 있고 선사시대에 쌓았던 산성의 흔적이 3㎞에 걸쳐서 길을 따라 낮게 쌓여 있다. 태풍으로 소실된 길이 있어 콘크리트 길을 올라야 했던 아쉬움은 있었으나 청수사(淸水寺)를 오르는 길에 만났던 오백나한상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불교 탄압으로 잘린 나한상의 머리가 거의 복원이 되었는데 오백 개의 입이 모여 ‘잘 살아야 한다.’고 외치는 것 같았다.

청수사는 예부터 인연을 맺고 임신과 순산을 관장하는 신앙을 모은 절이라고 했다. 몸에 아픈 곳이 있으면 불상의 그 부분을 만지고 몸의 아픈 부분을 만지면 몸이 낫는다고 해서 불상이 빤질빤질하게 광이 난다. 세상의 아기들이 건강하게 자라도록 지었다는 지치부 관음에는 모유가 부족하거나 아기와 관련한 질병으로 걱정하는 산모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절의 상징인 삼층탑도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미야마·기요미즈야마 코스 길을 내려왔다.

코스를 오르내리는 동안 머릿속에서 소백산자락길이 늘 떠나지 않았다. 소백산자락길은 소백산의 자락을 한 바퀴 감아 도는 자락길로서 전체 길이가 143km에 이른다. 모두 열두 자락으로 구성돼 있으며, 2009년 1∼3 자락이, 2010년 4∼7자락이, 2011년, 2012년에 8∼12자락이 완성되었다. 2011년에는 ‘한국 관광의 별’로 등극하여 명성도 얻었다.

소백산자락길은 단순하게 아름다운 자연이나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길만 따라가지 않았다. 물론 자락길을 가다가 보면 올망졸망한 마을 앞을 지나기도 하고, 길로 이어진 과수원을 지나고 소수서원이나 부석사를 지나는가 하면 소백산에서 흘러내리는 계곡물을 따라 걷다가 보면 경상도, 충청도, 강원도의 생활문화까지도 만날 수 있다.

소백산자락길을 만들 때 퇴계(退溪)의 유소백산록(遊小白山錄) 길을 따랐다. “죽계(竹溪)를 따라서 10여 리를 올라가니, 골짜기가 어둡고 깊었으며 숲과 계곡은 그윽하였다. 때때로 물과 돌이 흐르며 부딪혀서 메아리가 절벽과 골짜기 사이에 진동했다. 안간교(安干橋)를 걸어서 건너 초암사(草庵寺)에 이르렀다.” 죽계를 따라 올라가다 산의 가운데, 동쪽, 서쪽으로 갈라진다는 곳으로 자락길을 만들어 갔다. 퇴계의 길을 따라 자락길을 만들었다.

초암사는 의상대사가 부석사 터전을 보러 다닐 때 초막을 짓고 수도하며 임시 기거하던 곳이었다. 의상이 부석사를 찾아가는 길은 초암사에서 출발하여 좌석을 지나 사그래이, 부석사로 이어지는 길로 추정한다. 이렇게 의상의 길을 따라 자락길이 만들어진 것이다.

신라 때 죽죽(竹竹)이 개척했다고 하는 죽령 옛길도 소백산자락길이 되었다. 물론 그 길을 따라 수없는 사람들이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넘었던 고개다. 그렇게 보면 소백산자락길은 자연과 문화, 역사가 숨 쉬는 곳에 아직도 따뜻한 삶이 녹아 있는 길이다. 그냥 이 길 저 길을 이은 것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의 치열한 모습을 이은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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