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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중의 영주 톺아보기 [63] 인생의 터닝 포인트

2023. 04. 14 by 영주시민신문

사람이 살아가다가 보면 인생의 터닝 포인트와 같은 경험을 할 때가 있다. 남들에게는 아주 사소한 일들이 본인에게는 삶의 전환점이 되기도 하고 내게는 평범했던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엄청난 경험으로 다가가기도 한다. 같은 일을 당해도 당하는 사람의 처지에 따라서 그 의미가 달라지기도 하고 같은 책을 읽을 때도 아주 사소한 문구가 책을 읽은 사람에게 평생을 좌우하는 경구(警句)로 자리 잡기도 한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 미적분을 배웠다. 미적분을 처음 접하면서 그야말로 충격을 받았다. 그전까지만해도 삼각형이나 사각형, 원처럼 모양이 정형화된 도형의 면적을 내는 것을 주로 배웠다. 간단한 공식이 있어서 조금만 이리저리 꿰맞추면서 축소, 확대하고 계산하면 머리를 그렇게 굴리지 않아도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피타고라스 정리와 같이 특별한 공식도 외워서 대입하면 술술 풀리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미적분은 달랐다. 단순하고 정형화된 곡선이 아니라 이리저리 구불구불하여 불규칙한 곡선의 면적을 풀어내는 방법이다. 즉 곡선 아래의 넓이를 알아내려는 문제다. 미적분에서는 곡면을 수도 없이 잘게 쪼갠다. 영(0)에 가깝게 잘게 쪼갠 수없이 많은 개수의 면적을 합하면 전체 면적이 나오는 것이다. 곡면으로 이루어진 수영장에 얼마만치의 물을 채워야 하는지를 알 수도 있는 것이다. 쉽고 어려움을 떠나서 신세계를 보는 듯했다.

이때부터 사물을 잘게 쪼개는 습관이 생겼다. 잘게 쪼개는 습관은 사물을 자세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었다. 나무를 바라보면 나무의 줄기나 잎, 가지뿐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던 뿌리까지도 바라보는 힘이 생겼다. 어떤 때는 나무의 꿈을 바라보기도 했고 나무 위를 날아가는 새와 함께 살아가는 나무의 모습을 그려볼 수도 있게 되었다. 사물을 너무 잘게 쪼개다 보니 전체를 보지 못하고 나무의 본 모습을 파괴하는 잘못을 저지르기도 했다.

프랑스의 시인 보들레르와의 만남은 운명적이었다. 그의 시 「교감(Crrespondances)」과의 만남은 사물에 새로운 눈이 뜨이게 했다.

자연은 하나의 신전, 거기에 살아 있는 기둥은
이따금 어렴풋한 말소리를 내고,
인간이 거기 상징(象懲)의 숲을 지나면
숲은 정다운 눈으로 그를 지켜본다.

밤처럼 그리고 빛처럼 광막한
어둡고 그윽한 조화 속에서
저 멀리 어울리는 긴 메아리처럼
향기와 빛깔과 소리가 서로 화합한다.

보들레르를 만나기 전에는 주로 사물의 겉을 쪼개는 게 일이었다. 노을이 아름답고 산이 웅장하며 지는 꽃이 애처로웠다. 바람이 불었다. 벤치에서 잠이 들었다가 갑자기 깨어났을 때 바람에 흔들리면서 반짝이는 미루나무 잎을 보면서 멈칫 아름다움을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사물의 겉만을 맴돌면서 아름다움에 취하기도 하고 넘어지면서 살다가 보들레르의 교감을 만난 것이다.

보들레르는 자연은 상징의 숲이며, 그 숲속에서 향기와 빛깔과 소리가 서로 어우러지며 교감한다고 했다. 교감은 사물의 내면을 보게 했다. 사물의 내면에는 캄캄한 어둠만이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사물들이 모여 상징의 숲을 이루게 되니 이때부터는 숲에서 거대한 오케스트라의 교향곡을 들을 수 있게 됐다. 어떤 때는 사물 속에서 무용수들이 군집을 이루면서 춤을 추는 모습도 보였다. 길거리에 굴러가는 돌도 내면이 환하게 보여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의미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화려하던 벚꽃이 어느 날 훅 가버리고 산에는 나뭇가지마다 어린 연녹색 잎이 새록새록 나기 시작했다. 눈망울 또랑또랑한 아기를 닮은 연녹색 나무를 보면서 나무의 심장 소리를 듣는다. 여린 연녹색 잎사귀에 쿵쾅거리며 물을 뿜어 올리는 심장 소리를 듣고 있으면 살아야겠다는 충동을 느낀다. 이렇게 연녹색의 상큼함과 내면의 소리를 듣고 있다 보면 시인 엘리어트가 「황무지」에서 말한 “4월은 잔인한 달”의 황폐함을 넘어설 수 있을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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