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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중의 영주 톺아보기 [62] 정당의 현수막

2023. 04. 07 by 영주시민신문

요즘 목 좋은 곳에는 정당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차의 이동이 많고 시민들 눈에 쉽게 띄는 곳에 어김없이 현수막이 붙어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현수막은 관련기관의 허가를 받고 정해진 장소에만 설치하게 돼 있는데 정당의 현수막은 그렇지 않다. 정당의 정책이나 정치 현안을 게시하는 경우는 허가 신고 및 금지 제한 규정을 적용받지 않는다. 그러니 정당 활동과 관련하여 어떤 내용이든 원하는 장소에 정당의 현수막은 설치할 수 있다.

문제는 현수막의 내용이다. 정치 현안을 다루다 보니 그 내용이 정제되지 않고 대체로 시민들을 자극하는 언어를 사용하게 된다. 정치 현안에 대한 각 정당의 입장이 대립할 수밖에 없으니 금방 눈에 들어오는 구호를 쓸 수밖에 없다. 짧은 현수막 몇 자 안에 시민들 눈에 띄는 내용을 포함해야 하니 자극적인 표현을 쓸 수밖에 없다. 자극적인 표현은 또 다른 자극적인 표현을 부르고 결국은 극단적인 표현으로까지 치달을 수밖에 없는 것이 언어의 원리다. 각 정당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으니 태생적으로 이렇게 될 수밖에 없다.

요즘 우리는 정보의 과잉 시대를 살고 있다. 매스컴에서는 종일 뉴스와 해설이 흘러나온다. 포털 사이트에는 대부분 뉴스가 첫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다. SNS에서 만나는 뉴스나 정보만 해도 엄청나게 많다. 유튜브를 통해서 생산되고 있는 정보도 어마어마하다. 사실에 근거한 뉴스뿐만이 아니라 쏟아지는 가짜 뉴스까지 더하면 그야말로 정보의 홍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다가 목 좋은 곳에 현수막까지 자극적인 정보를 더하니 현수막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마음이 불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극적인 언어나 별다른 설명이 없는 구호는 아이들 교육에도 바람직하지 않다. 좀 순진한 말이긴 해도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는 관용과 칭찬, 겸양과 동의의 격률 즉 규범이나 원칙을 가지고 말하라고 가르친다. 현수막의 내용이나 구호는 학교에서 가르쳤던 것과는 정반대다. 구호는 자극적일수록 효과가 있기에 다짜고짜 내지를 수밖에 없고 구호를 보고 바른 판단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논리적인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들 뿐만 아니라 현수막 어디에도 관용이나 겸양 등과 같은 정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자극적인 정당의 현수막은 정치에 더욱 염증이 나게 만든다. 우리는 정치를 떠나서는 살 수가 없다. 사람이 살아가는 곳 어디에나 정치의 힘은 작용한다. 눈만 뜨면 여기저기서 정치 얘기가 들려 온다. 정치는 바로 우리 곁에 있다. 우리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정치의 힘은 우리 삶의 깊숙한 데까지 미치고 있다. 그런 정치가 자극적인 내용으로 구호로만 다가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정치에 대한 불신을 조장할 수도 있는 것이다. 중앙의 정치는 그렇다고 쳐도 중소도시 곳곳에 자극적인 내용이 펄럭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현수막은 시민들을 논리적으로 설득하기보다는 말의 자극적인 충격을 통하여 전달하기 때문에 상대방을 설득하기보다는 내 편 만들기에만 관심이 있다고 봐야 한다. 마음속에 모든 결정을 하고 현수막을 보기 때문에 같은 편이면 손뼉을 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상대편의 말에는 적개심을 드러내면서 확실한 내 편이 된다. 판단을 유보하고 있거나 별 관심이 없었던 극소수의 사람들에게 충격을 줄지 몰라도 언어의 자극성으로 인해서 얻는 것보다는 감정의 소비가 너무 심한 것이 문제다.

그래도 국회 차원에서 논의가 되고 있다니 다행스럽다. 그때까지만이라도 영주에서는 좀 자극적이고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현수막은 없어지거나 정제된 언어를 쓰면 어떨까 싶다. 물론 사사건건 대립할 수밖에 없는 정치적 상황에서 정제된 언어를 쓴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을 수도 있다. 확실한 자기 입장을 명확하게 드러내지 못해서 밋밋할 수도 있다. 물에 물 탄 듯해서 요즘 시대에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헛되게 감정을 소비하면서 현수막을 바라보는 시민들이 꽤 많다는 것을 살펴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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