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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중의 영주 톺아보기 [61] 세무서 사거리

2023. 03. 31 by 영주시민신문

원래 세무서 사거리에는 서천이 흘렀다. 서천은 영주시민회관에서 세무서 사거리로 흘러서 영주역과 경북전문대학교 앞을 지나서 지금 서천으로 흘렀다. 61년 영주 대홍수가 나면서 현재 삼판서 고택이 있는 산을 절개하고 서천을 내면서 새로 도로가 생긴 것이다.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네.’란 말이 유명무실하게 산천과 인걸이 모두 간데없다. 정비 공장 옆에 있는 벽화만이 옛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 뿐 이전을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세무서 사거리에는 영교(榮橋)가 있었다. 영교는 상공회의소가 있는 곳에서 서천을 가로질러 한절마 쪽으로 나 있던 다리였다. 1937년에 구성산을 배경으로 영교를 찍은 사진이 있다. 영교가 멋들어지게 서천을 가로지르고 멀리 구성산 꼭대기에 가학루가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하다. 가학루 아래에 동구대가 솟을대문처럼 솟아 있고 강 서쪽에는 서구대가 있다. 그야말로 절경이 아닐 수 없다. 옛 영주에 이런 풍경이 있으리라고는 감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사진 풍경이었다.

지금도 구성산과 가학루는 그대로 있다. 동구대는 보이기는 하지만 철길에 막혀 가까이에서 보면 여느 산 낮은 절벽을 보는 듯해 마음이 아프다. 서구대는 건물에 막혀서 그런 곳이 있었나 할 정도로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서천 대신에 아스팔트 도로와 자동차가 흐르고 있을 뿐이다. 영교로 이어지던 예천 통로는 흔적을 찾기가 어렵다. 세무서 사거리로 교통신호에 따라 자동차만 시민회관, 영주역, 세무서, 중앙통으로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세무서 사거리는 영주동, 휴천동, 가흥동으로 가는 지점에 있다. 영주동은 영주의 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관공서나 학교도 영주동 근방에 밀집해 있었다. 그러다가 영주역과 영주시청이 휴천동으로 가고 경북전문대학교가 생기면서 휴천동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지금 가흥동에는 택지가 조성되면서 가흥동으로 사람들이 모이고 있다. 새로운 땅을 찾아서 변화하는 도시의 생명력을 영주도 외면할 수 없었다.

세무서 사거리를 아무리 요모조모 뜯어봐도 영교가 위치했던 옛 모습은 없다. 그렇다고 새로운 도시의 매력이 있어서 사람들이 모일 법한 새로운 모습을 갖추지도 못했다. 영주동에 얽혀 있는 이야기도 없고, 가흥동처럼 사람이 몰려들지도 않는다. 세무사 사무실이 몇 군데 있고, 상공회의소와 함께 소방지소가 있으며 세무서 사거리에 바로 영주시산림조합이 신축 예정이라고 한다. 아무리 찾아봐도 이야깃거리가 마땅치 않다.

세무서 사거리는 영주동, 휴천동, 가흥동으로 가는 경유지다. 경유지는 거쳐 지나가는 땅으로 목적지에 비해서 비중이 조금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있다. 사람들은 경유지보다 목적지가 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따져 보면 이 세상에는 목적지보다는 경유지가 더 많다. 어떤 도시는 경유지로서의 의미에 비중을 두면서 도시를 발전시키기도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경유지로서의 세무서 사거리의 문화적 의미를 찾아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영주의 역사적, 문화적 맥락에서 세무서 사거리는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영교는 영주에서 예천으로 가는 다리 역할을 했으나 과거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가까운 곳에 있는 동구대와 서구대를 건물 앞으로 끌어올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정비 공장의 벽화를 더욱 보강하고 주변을 정리하면서 영주시산림조합을 신축할 때 이런 문화적 의미가 조금이라도 곁들여진다면 더더욱 좋은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이야기가 만들어지면 어느덧 대상은 문화의 옷을 입는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듣고 감동하고 이야기의 실체를 찾아서 다니다가 보면 문화의 옷을 보고 입어 보기도 한다. 세무서 사거리에도 영교의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경유지로서의 이야기도 만들면 나름대로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세무서 사거리를 무심코 지나갔지만 이제 새로운 의미를 끌어내는 것은 우리 시대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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