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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중의 영주 톺아보기 [57] 지금, 여기가 제일이다

2023. 03. 03 by 영주시민신문

보름에 초등학교 친구들이 모여 윷을 노는데 한 친구가 “상금이, 장금이도 제일이지만 지금이 제일이다.” 소리를 질렀다. 장금이는 국민 드라마 「대장금」의 주인공이고 상금이는 초등학교 동창생이다.

지금이 제일이라는 말을 재미있고 유쾌하게 내뱉은 말이라 뒤통수를 탁 때리는 신선함이 있었다. 지금까지 지금이 중요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으뜸이라고 생각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지, 지금이 제일이지.” 다시 한번 다짐하면서.

언어학을 처음 접하면서 에네르게이아의 언어를 흥미 있게 생각한 적이 있다. 독일의 언어 철학자인 훔볼트는 언어를 에네르게이아(energeia)라고 했다. 말이 ‘무엇을 이루어 내는 힘’을 가졌다는 것이다. 에네르게이아라는 말에 에너지(energe)가 들어 있다. 자동차가 에너지 때문에 움직이듯이 말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고운 말을 쓰면 마음이 고와지고 거친 말을 쓰면 사람됨이 거칠어지는 것을 보면 일리가 있다.

아들러의 심리학을 철학자와 청년의 대화체로 기술한 「미움받을 용기」에도 에네르게이아적 인생이 나온다. 여기서 에네르게이아적 인생을 춤이나 여행, 등산을 예로 들어서 설명하고 있다. 춤은 어떤 목적지를 향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춤을 추고 있는 그 순간이 중요하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어느 곳에 도착하기 위해서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집을 나서는 순간 여행은 순간순간 시작되는 것이다. 산 정상에 오르는 것이 목적이라면 굳이 등산할 필요가 없다. 산을 오르면서 그 과정을 즐기는 것이 등산이라는 것이다.

에네르게이아적 인생은 목적의 완성보다는 과정 자체를 중요하게 여긴다. 춤을 추고 있는 지금, 여기 찰나가 중요하다. 지금 하는 일 그 과정, 그 자체가 중요하다. 삶은 목적을 향해서 지루하게 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 바로 순간마다 완결된다.

어두운 극장에서 희미한 불빛을 따라 가면 앞이 보이지만 강력한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면 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이처럼 삶이란 강력한 불빛처럼 지금, 여기서 인생을 진지하고 빈틈없이 살아가는 것이다. 과거의 아픔이나 다가올 미래의 불안으로 떨 일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춤을 추는 것이다.

트바로티 김호중이 부른 「지금 이 순간」을 들어본다. “지금 이 순간 지금 여기/ 간절히 바라고 원했던 이 순간/ 나만의 꿈이 나만의 소원/ 이뤄질지 몰라 여기 바로 오늘/ 지금이 순간 지금 여기/ 말로는 뭐라 할 수 없는 이 순간/ 참아온 나날 힘겹던 날/ 다 사라져간다. 연기처럼 멀리/ 지금 이 순간 마법처럼/ 날 묶어왔던 사슬을 벗어던진다.” 에네르게이아에서 말하는 순간이나 찰나와는 결을 달리하기는 하지만, 이러한 순간의 점이 모여서 삶이라는 선을 만들어 간다는 점에서 이 노래는 설득력이 있다.

훔볼트의 에네르게이아가 말의 힘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미움받을 용기」에서는 강력한 스포트라이트와 같이 순간을 진지하고 빈틈없이 살아가는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춤을 추는 무용수가 발을 디디면서 순간순간 모든 힘을 집중해서 절실하게 춤을 추듯이 지금, 이 순간을 진지하게 힘 있게 살아가는 것이다. 진지하다고 해서 늘 긴장을 가지고 살아가자는 것은 아니다. 재미있게 살아가는 것도 진지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사람들을 재미있게 하는 코미디언을 누가 진지하지 않다고 할 수가 있겠는가?

한때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명대사 카르페 디엠(carpe diem)을 외치면서 다닌 사람들이 많았다. 라틴어로서 ‘현재를 즐겨라.’로 번역되는 말이다. 영화에서는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교육에서 탈피하여 자신의 개성을 찾아서 자유롭게 살아가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말이다.

그렇게 보면 지금 내가 사는 여기가 소중하므로 진지하게 최선을 다해서 찰나를 살아가라는 말과도 뜻이 서로 통한다. 지금, 여기에 대한 우리들의 생각이 바뀔 때 우리 삶의 변화도 생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마지막으로 「미움받을 용기」에 나온 한 문장을 덧붙인다. “세계는 단순하다. 인생도 단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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