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배용호의 문화확대경 [252] ​​​​​​​조선 최후의 지성, 면우 곽종석의 독립운동 < 배용호의 문화확대경 < 오피니언 < 큐레이션기사 - 영주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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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호의 문화확대경

배용호 (전 영주교육장)

배용호의 문화확대경 [252] ​​​​​​​조선 최후의 지성, 면우 곽종석의 독립운동

2023. 02. 24 by 영주시민신문

위정척사에 앞장섰던 유림의 끈질긴 의병 활동에도 불구하고, 1910년 「한일병합(합방)」이 되었다. 이를 막아내지 못했다는 자책감의 선비들은 이내 나라를 되찾기 위한 독립운동에 돌입하게 된다. 사실상 정면충돌이 어렵다고 판단한 이들은 만주로 자리를 옮기거나 외세를 이용해보려는 노력에 치중했다. 심산 김창숙이 주도한 『파리장서(巴里長書)』 운동이 그중 하나이다. 1919년 ‘파리평화회의’에 보낸 장문의 독립 호소문 사건이다. 이 운동의 사실상 지휘자가 영남 유림의 영수로 불리던 면우 곽종석이다.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 1846∼1919)은 지리산 인근의 경남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 초포마을에서 출생하여, 그리 멀지 않은 거창군 가북면 중촌리 다전마을에서 별세했다. 그러니 경남(경상우도)의 선비인 셈이다. 그러던 그가 학문에 매진(邁進)하던(37세) 때 돌연, 태백산 기슭 춘양면 학산리 새목이 마을에다 작은 움막을 지어 거처를 옮긴다.

그리고 자신의 호를 면우(俛宇, 숙이고 들어가는 집)라고 붙였다. 손수 감자를 심고 도토리를 주워 생계를 이으면서, 거창으로 옮겨 갈 때까지 14년 동안을 이 지방(경상좌도) 선비들과 교유하면서 이른바 퇴계학파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이리하여, …이상정…이진상(성주)-곽종석-정태진(줄포)-이가원(예안)으로 이어지는 퇴계 학맥의 중추가 되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단발령과 변복령에 항의하는 봉화 삼계서원 유림운동(1895년)을 선도하기도 하고, 이른바 ‘삼계통문(三溪通文)’으로 일컬어지는 의진 결성을 촉구하는 등 지역에 끼친 영향이 적지 않다.

그러나 자신은 의병에 동참하지 않았다. 잘 훈련된 일제 군대를 맞는 오합지졸 의병의 무모한 희생은 옳지 않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군자는 마땅히 만세를 도모해야지, 한때를 위한 계책이어서는 안 된다>는 지론이었다. 그래서 그는 「독립청원서」, 「포고천하문」 등 비전투 활동에 주로 가담하게 된다.

1919년, 면우 곽종석은 이미 74세의 고령이었나 유림의 대부로서 『파리장서』운동을 사실상 배후 지휘한다.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이라는 그의 애제자를 총책임자로 전면에 내세운 셈이다. 면우는 병석이면서도 파리평화회의에 보낼 독립청원서 기초를 완성하였다. 이것이 세칭 「면우본」이다. 2,674자로 된 장문의 「면우본」 문서는 봉화 바래미마을 만회고택(晩悔古宅)에 은밀히 소집된 김창숙을 비롯한 여러 우국 동지들에 의해 ‘파리평화회의’에 보낼 독립청원서로 채택된다.

소위 『파리장서』가 되는 순간이다. 이렇게 탄생한 『파리장서』에 면우는 대표자로 선뜻 서명했다. 죽을 명분을 찾았다는 뜻이다. 서명자는 그를 포함해 전국의 명망 있는 유림 137명이었고, 그중 십여 명이 넘는 영주·봉화지역 유림은 거의 곽종석의 제자들이었다. 이렇게 힘들여 문서가 만들어졌지만, 이를 전할 일이 또한 만만치 않았다.

그는 만약을 위해 문서를 지니고 갈 김창숙에게 전문을 모두 외우도록 지시했다. 이와는 별개로 한지에 옮겨 적은 문서를 새끼처럼 꼬아 짚신으로 만들었다. 다만 길 떠날 김창숙은 서명자 명단에 제외시켜 놓았다. 일경의 눈을 피하기 위한 이중삼중의 장치였다. 이런 연고로 『파리장서』 서명자 명단에 주동자인 김창숙의 이름이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꼼꼼히 다져 김창숙을 상해에 보내 놓고, 면우 자신은 예상대로 일경에 검거됐다. 이후 구금, 투옥 중 지병의 악화로 3개월 만에 석방됐지만, 후유증이 겹치면서 1919년 8월 24일 거창군 가북면 다전 여재에서 향년 74세로 별세했다. 그의 장례는 ‘39일장’으로 치러진 유림장이었다지만, 전국의 유림이 1만여 명이나 몰려들어 그의 장례식은 가히 국장(國葬)을 방불케 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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