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여느 해와 같이 명예퇴직하는 교원들이 많다. 퇴직하는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무엇보다도 가르치는 일에 회의를 느낀 선생님이 많아서일 게다. 얼마 전까지 학생을 가르쳤던 사람으로서 요즘에 가르치는 일이 그리 녹녹지 않다는 데에 많은 선생님이 동의한다. 교실에서 학생들이 일탈 행동이나 예상치 못한 행동으로 수업을 방해할 때 마땅한 방법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다양한 수업 방법을 동원해서 수업을 진행하려고 하지만 한계가 있다.
학생 인권과 교권을 파이를 키우고 나누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내 파이가 커지면 상대방이 작아지는 것과 같은 생각이다. 학생의 인권이 점점 커지게 되면 교권이 줄어들고, 학생 인권이 줄어들면 교권의 파이가 점점 커지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자기 파이를 더 차지하려면 결국 충돌이 일어나고 갈등만 커지게 되는 것이다. 인권이나 교권은 권력이 아니라 권리이기 때문에 사실 이런 파이의 비유는 잘못된 관념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딜레마 상황으로 이해한다. 딜레마는 어느 쪽을 선택해도 곤란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순간 다른 한쪽을 포기해야 한다. 딜레마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우산 장사와 소금 장사를 하는 아들을 둔 어머니의 심정이다. 햇빛이 쨍쨍하면 우산 장사하는 아들이 걱정되고 비가 오는 날이면 소금 장사 아들을 걱정하는 것이다. 학생의 인권을 선택하면 교권이 죽고 교권이 살면 학생 인권이 죽는다는 것이다.
학생 인권과 교권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이 커지면 저것이 줄어들고 저것이 커지면 이것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어느 하나만을 선택하여 다른 한쪽을 포기해야 하는 것도 더더욱 아니다. 이제 우리 사회는 이러한 시행착오를 겪을 만큼 겪었다. 교권이 전횡을 휘둘러서 학생 인권이 무시됐던 잘못된 과거도 경험했다. 학생의 인권이 성장함에 따라 교실이 혼란스러운 상황도 경험하고 있다.
학교는 학생, 교사, 학부모로 구성돼 있다. 학생 인권과 교권은 이러한 학교 구성원의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다. 학생은 학생으로서의 본분을 다하면서 선생님을 존경하고 교사는 학생들을 사랑으로 잘 가르쳐야 한다. 학부모는 학교에서 배움과 가르침이 왕성하고 자유롭게 일어날 수 있도록 학교를 지원하고 협력해야 할 것이다. 특히 학생 인권과 교권이 적절한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시소의 지렛대 역할을 잘해야 할 것이다.
요즘 언론에서 많이 듣는 말이 있다. 교실이 붕괴되고 있다. 교권이 추락하고 있다. 수업 중에 아이들이 책상 위를 뛰어다닌다. 심지어 교실 바닥에 드러누워 있다. 어떤 학생이 선생님 몰래 휴대폰으로 촬영하여 물의를 일으켰다. 벌을 줄 수도 없고 야단을 칠 수도 없다. 학생이 받아들이는 감정에 따라 아동학대가 될 수도 있다. 정서적 학대라는 애매함에 시달릴 때도 있다. 이런 문제를 좀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사면초가(四面楚歌)라고 한다.
물론 그렇다고 교실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선생님이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수업에서 함께 만들어 가는 수업이 이뤄지고 있다. 학생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함께 협력하여 문제를 해결하기도 한다. 재미없는 일방적 강의에서 벗어나 재미있는 놀이를 하는데 공부가 되는 수업 방식도 이뤄진다. 텍스트를 보고 학생들끼리 질문하고 대답하면서 수업 내용을 심화시키기도 한다. 이런 교실에서는 붕괴나 추락은 없다. 재미도 있고 공부도 된다.
어떤 경우에도 학생의 인권은 무시돼서는 안 된다. 학생들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다만 다른 사람의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을 제재하는 것에 대해서는 엄격한 대응이 필요하다. 교사 개인에게 맡겨야 할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교권을 살리는 것은 선생님을 살리는 것을 넘어 교육을 살리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교권이 무너지면 교육이 무너지고 미래가 무너진다. 그만큼 학생 인권도 중요하나 교권도 중요하다. 학생 인권과 교권이 균형 있게 작동하는 살 만한 세상이 그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