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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중의 영주 톺아보기 [53] 저녁 8시, 시내를 거닐다

2023. 02. 03 by 영주시민신문

저녁 8시는 술시(戌時)다. 옛날 어른들은 술시가 되면 술이 술술 넘어간다는 농을 하곤 했다. 저녁으로 치면 초저녁이요, 모여 식사를 끝내고 이제 본격적으로 저녁 시간을 보내 보자는 말이었다. 그러니 8시는 하루 시간 중에서 분기점 같은 나름대로는 의미 있는 시간이다. 어차피 집에 들어가지 못했으니 귀가하기에는 조금 아쉬운 시간이기도 하다. 몇 년 전만 해도 저녁 8시, 영주 시내는 사람들로 붐비는 시간이기도 했다.

저녁 8시가 좀 덜 돼서 문화파출소를 출발한다. 8시밖에 되지 않았는데 근처에 적막감이 돈다. 카톨릭병원을 지나면서 인생고깃길 쪽을 보니 그래도 식당마다 불이 훤하다. 아직은 손님들이 있는 모양이다. 그 옛날 영주 시내의 한복판으로 영화를 누렸던 분수대를 지나 구역전통 을 지나면서 아니나 다를까 어두컴컴하니 조용하다. 가끔 상점에 불이 켜져 있지만 대부분 가게가 문을 닫았다. 저녁 8시에 시가지가 마법에 걸린 듯이 조용한 게 마음이 편치 않다.

어렸을 때 마을에 놀러 다니던 생각이 불현듯이 떠올랐다. 친구 집에 모여 놀다가 집에 올 때쯤이면 아마 8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을 게다. 시골에 겨울밤 8시는 정말 적막한 시간이다. 전기가 들어온 지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니 캄캄하기 이를 데가 없어 하늘에 있는 은하수들이 쏟아져 내리던 시절이다. 우리 집은 마을에서 맨 꼭대기에 있었으니 마지막 백여 미터가 무섭고 적막한 시간이었다. 시내를 거닐며 그때의 적막감이 생각나다니.

번영로로 명명된 길 여기저기를 다닐 때는 이미 8시가 조금 넘는다. 태극당에서 돌아서 영주의 번화가 중앙통으로 접어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앙통의 8시는 영주에서 가장 핫한 거리였다. 어깨가 부딪혀서 다니기가 거북했던 때가 벌써 까마득하다. 겨울이라서 그런지 중앙통의 8시도 여느 거리와 별단 다른 것이 없었다. 주로 브랜드가 있는 옷 가게가 즐비한 곳인데 많은 상점이 문을 닫았고, 불이 켜져 있는 몇몇 집도 문을 닫을 참이었다.

코로나는 회식 문화를 많이 바뀌 놓았다. 코로나 이전에는 저녁 8시가 되면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많았다. 이젠 저녁이 되면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온다. 저녁 8시가 한가한 이유 중에 하나다. 코로나로 인한 심각한 경기 침체도 원인이 될 수 있겠다. 새로운 시가지가 형성되면서 구도심 공동화 현상도 한몫한 것도 있다. 이젠 8시를 돌이킬 수는 없다. 흥성했던 저녁 8시의 과거를 추억할 게 아니라 이젠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요즘 사람들은 스토리를 찾아 나선다. 개인도 그렇지만 식당이나 가게도 자기만의 스토리를 만들어야 한다. 도로에도 스토리가 있어야 하며 벽에도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관사골에도 스토리가 있다. 중앙분식이나 나드리 같은 식당에도 추억의 스토리가 쌓였다. 랜드로바 앞에 있는 랜떡에도 맛을 뛰어넘는 스토리가 있다. 근대역사문화거리에도 스토리가 있으며 도시재생도 결국은 묻혀 있는 스토리를 세상 밖으로 끌어내는 의미 있는 작업이기도 하다.

영주의 문화예술 공간을 표방하는 「즈음 갤러리」도 영주에서 독특한 스토리를 만들어 가고 있다. 송재진 관장은 즈음 갤러리 소개에서 ‘즈음’은 설렘과 기다림의 시간이라고 하면서 즈음 갤러리에서 만나게 되는 그림들이 설렘의 만남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영주에도 몇 군데 전시 공간이 있지만 「즈음 갤러리」만의 독특한 스토리가 있다. 스토리가 있으면 왠지 모르게 사람들이 보기에 감흥이 느껴지고 있어 보인다.

“내게 사실을 말해 다오, 배울 테니. 내게 진실을 말해다오, 믿을 테니. 내게 이야기를 들려다오, 네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남을 테니.” 스토리에 대한 인디언 속담이다. 스토리는 사실과 진실보다 더 힘이 있다. 사실은 재미가 없고 진실은 너무 고고하다. 스토리는 재미도 있을뿐더러 가슴을 후벼파는 감동이 있다.

이제 스토리가 없으면 아무리 그럴듯해도 사람들은 외면한다. 살아남고 싶으면 우리는 우리만의 스토리를 만들어야 한다. 성수동의 대림창고나 백종원의 예산 시장터처럼 번영로도 스토리로 가득해야 사람들이 붐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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