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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중(시인)

김신중의 영주 톺아보기 [52] 한끗 차이의 성찰

2023. 01. 20 by 영주시민신문

설 전 비로봉에 올랐다. 어머니처럼 푸근한 소백산이지만 겨울만의 칼바람이 매섭다. 북쪽에서 불어오는 칼바람에 몸이 날아갈 듯하다. 비로봉에 올라 본 사람들은 안다. 북쪽에서는 칼바람이지만 남쪽으로 몇 발자국만 내려오면 바람이 거의 없다. 비로봉을 사이에 두고 간발의 차이로 바람이 있고 없다. 간발(間髮)은 글자 그대로 ‘머리 한 올 사이’라는 뜻인데 비로봉이 꼭 그렇다. 정말 한끗 차이로 바람이 다르다.

비로봉에 내리는 비도 생각해 보면 한끗 차이다. 조금만 북쪽에 내려도 남한강으로 흘러가 서울로 가지만 남쪽 지역에 내리면 서천으로 흘러 낙동강으로 흘러간다. 비로봉에 올라 남대리를 생각한다. 남대리는 백두대간 너머에 있어 충청도나 강원도가 되어야 하는데 경상도가 됐다. 임금이 팔도의 물을 모두 마셔야 고루 다스릴 수 있다고 하여 남대리를 경상도 땅에 귀속시켰다 한다. 남대리는 한끗 차이를 사람의 힘으로 바꿔놓은 상징이 된 셈이다.

이제 한끗 차이라는 말은 우리 일상생활에 두루 쓰이는 말이 됐다. 원래 ‘끗’은 투전이나 골패, 화투 따위에서 쓰는 말이며 ‘한끗’은 근소한 차이나 간격이 있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한끗 차이로 졌다.’에는 아깝게 진 사람의 아쉬움과 탄식이 묻어난다. 한끗 차이는 사소한 차이로 엄청난 결과가 나타나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같은 옷을 입었는데도 작은 액세서리 하나가 전체 분위기를 바꾸는 것과 같은 것을 말한다.

사람됨도 그렇다. 인격이란 게 원래 처음부터 모든 것이 뒤틀리거나 반듯한 게 아니다. 가정의 밥상에서 출발하고 작은 행동에서 시작한다. 어울리는 친구들과 말을 섞으며 습관이 이루어지면서 자기의 모습을 갖추어 나가게 된다. 가끔 ‘저 양반은 저거 딱 하나만 바꾸면 사람이 달라 보일 텐데.’ 하는 아쉬움을 가질 때가 있다. 이런 말을 사람됨에 있어서 한끗 차이라고 하는데 누구든지 완벽할 수는 없는지라 이런 아쉬움은 조금씩 있다.

이념이나 정치의 집단 양극화도 한끗 차이에서 출발한다. 요즘 정치를 보면 진보와 보수, 정당 간의 집단 양극화가 극에 달했다. 유튜브나 신문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면 진보와 보수가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는 듯한 말을 쏟아낸다. 같은 사건에도 극명하게 차이가 난다. 이도 저도 싫다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심지어 제발 정치가 사라졌으면 하는 극단적인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정치는 공동체가 어떤 방식으로 존재해야 할지를 정하는 최상위 가치체계라고 한다. 정치를 떠나서 우리의 삶은 존재할 수 없다. 정치는 개인이나 집단이 이익과 권력을 얻거나 늘이기 위하여 사회적으로 교섭하고 정략적으로 활동하는 일이기 때문에 조직이 있는 곳에는 정치가 있다. 특히 SNS나 매스컴의 발달로 정치는 바로 우리 옆에 있다. 우물 파서 물 마시며 태평성대를 누리며 정치를 느낄 수 없었던 요순시대는 우리에게 더 이상 없다.

여기에 한끗 차이의 성찰이 있다. 소백산 비로봉에 올라가서 남쪽과 북쪽을 고루 볼 수 있는 지점까지 올라가 보자는 말이다. 물론 낙동강이나 한강으로 흘러간 비로봉의 물은 다시 돌아올 수 없으나 낙동강과 한강으로 갔던 사람들의 생각은 다시 돌이킬 수 있다. 상대방의 면면을 한끗 차이에서 바라보면서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다. 한끗 차이까지 오게 되면 역지사지(易地思之)가 가능한 지점까지 오게 된다.

한끗 차이로 엄청난 결과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한끗 차이밖에 나지 않으니 뒤집힐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한끗 차이의 묘미다. 한끗 차이로 성공한 사람이 있는 반면에 한끗 차이 때문에 실패한 사람들도 있다. 한끗 차이를 성찰하지 못하면 양극단에 치우쳐서 편견과 아집으로 살아갈 수도 있겠다. 달리 보면 한끗 차의 성찰이 없으면 높은 곳에 오르지 못하기 때문에 편견과 선입견에 묻혀 더 이상 사상(事象)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비로봉에 올라야 동서남북이 보인다. 한끗 차이의 성찰은 모든 걸 보게 하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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