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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중의 영주 톺아보기 [49] 가지치기에서 배우다

2022. 12. 30 by 영주시민신문

축구에 멀티플레이어가 있다. 수비, 중앙 미드필더, 공격수 등 어떤 위치나 상황에서도 자기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선수를 지칭하는 말이다. 멀티플레이어는 한 가지가 아닌 여러 가지의 분야에 대한 지식과 능력을 갖추고 있는 사람을 뜻한다.

흔히 하는 말로 이것저것 모두 잘하는 사람이다. 영어가 우리말이 되어 국어사전에 실릴 만큼 사람들이 흔히 즐겨 쓰는 말이 되었다. 멀티플레이어는 축구만이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사람들이 선호하는 능력의 소유자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참 부러운 사람이다.

일에서 멀티플레이어는 사람들에 따라서 평가가 조금씩 다르다. 복잡한 사회에서는 멀티 기능을 가져야 성공할 수 있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그래도 한 우물만을 파면서 한 곳에 집중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관점이나 하는 일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을 것이지만 너무 멀티 기능을 강조하다 보면 오히려 일이 혼란해질 수 있다. 반면에 한 우물만 고집하면서 주변을 돌아보지 않고 자기 일에만 몰입하다 보면 고립이 되면서 협업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연세가 있는 분들을 만나면 일에 묻혀 살았던 지난날을 후회하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스스로 일벌레로 지칭하면서 일에 대한 멀티플레이어로 일만 보고 살아온 삶을 떠올리며 다시 태어나면 절대로 그렇게 살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다. 일이란 게 참 묘한 게 사람을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기는 하지만 가끔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 거리를 두고 멀찍이 떨어져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주변의 것을 살피지 못하고 살아가다가 보면 자기 자신도 모르게 일의 수렁에 빠져서 헤어져 나올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제임스 패터슨의 『더 다이어리(The Diary)』에서 수잔이 니콜라스에게 하는 말을 그대로 옮긴다. “인생은 양손으로 다섯 개의 공을 던지고 받는 게임 같은 것이란다. 그 다섯 개의 공은 일, 가족, 건강, 친구, 자기 자신이야. 우리는 끊임없이 다섯 개의 공을 던지고 받아야 하는데, 그중에서 ‘일’이라는 공은 고무공이라 땅에 떨어뜨려도 다시 튀어 올라오지. 하지만 건강, 친구, 가족, 자기 자신이라는 나머지 네 개의 공은 유리공이란다. 그래서 한 번 떨어뜨리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흠집이 생기거나 금이 가거나, 아니면 완전히 깨져 버리지. 그 다섯 개의 공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해야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는 거야.”

우리 주변에도 일 때문에 건강이나 가족, 친구나 자기 자신을 잃은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아니 주변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바로 그렇게 살아오거나 살고 있다. 대부분 사람은 니콜라스의 대화를 읽고 격하게 공감한다. 우리가 살아온 시대가 힘들고 어려워서 정신없이 달려올 수밖에 없었지만, 우리가 일 때문에 잃어버린 것을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현실 때문이었다고 아무리 변명해도 금이 가고 깨진 것을 되찾을 수도 없을뿐더러 원래 모양대로 붙일 재간도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일만 해도 그렇다. 일은 고무공이지만 늘 탄력 있게 튕겨 오르는 것은 아니다. 복잡하게 얽히고설키면 바람이 빠질 수도 있고 심지어 터져버릴 수도 있다. 잘못해서 공에 바람이 빠지면 깨진 유리공보다도 더 초라한 모습으로 길바닥에 버려질 수도 있는 것이다. 멀티플레이어도 그렇다. 멀티플레이어라는 것이 좋게 말하면 빼어난 능력일 수도 있지만 달리 보면 얽히고설키어서 원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혼돈 상태일 수도 있다.

나무도 가지가 복잡하게 얽혀서 바람이 통하지 않으면 스스로 나뭇가지를 버린다. 농부들은 봄이 오기 전에 반드시 가지를 친다. 가지치기는 몸의 일부를 버리는 것이며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하는 것이다. 몸의 일부를 버리고 꽉 채운 것을 조금씩 덜어내는 행위와 같다. 그렇게 해야 꽃도 많이 피고 튼실한 열매도 맺을 수 있다. 우리의 생각이나 일도 마찬가지다. 생각의 가지를 치고, 일의 가지를 쳐서 단순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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