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이 다가온다. 유년 시절에 목이 터지라고 불렀던 ‘탄일종, 징글벨, 흰 눈 사이로, 그 어린 주 예수’가 귀에 쟁쟁하다. 연필이나 크레파스를 선물로 받았던 기억이며, 늘 배가 고팠던 시절에 그날만은 배부르게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선물로 받은 껌을 다 씹고 나서 예쁜 껌을 만든다고 크레파스와 씹어서 버리기가 아까워 문설주에 붙여 두고 내내 씹었던 엄청난 기억(?)도 새롭다. 손등에 아무리 때가 껴도 아무도 검사하지 않고 야단을 치지 않아서 좋은 날이었다. 유년의 성탄절은 이런 기대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성탄절의 추억은 동원교회에 있었다. 지금은 헐려서 흔적도 없지만 사천교회의 전신이다. 구두들에서 자봉으로 가는 길옆 높은 언덕 위에 있었다. 새내에서 보면 사천을 넘어 마을과 외따로 떨어진 교회였다. 구두들에서 동원교회까지 2km 남짓이라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어린애 종종걸음으로는 먼 길이었다. 100여 미터 언덕길은 보통 높이가 아니었다. 눈이라도 내리면 새끼를 맨 검정 고무신이 미끄러지면서 몇 번이나 벗겨져야 닿을 수 있었다.
성탄절 추억의 백미는 새벽송이다. 텔레비전 안에 사람이 살면서 연기를 한다고 생각했던 때니 당연히 산타 할아버지는 있다고 생각했다. 헤져서 꿰맨 양말을 머리맡에 두고 잠을 잤다. 산타 할아버지가 오는 시간은 새벽송을 부르는 시간이라고 추측했다. 새벽에 어렴풋이 사람들 발소리가 들렸다.
‘그 어린 주 예수 눌 자리 없어’를 한 소절 부를 때쯤 대문이 열리고 엄마가 과자봉지를 들고 나간다. 산타 할아버지가 오면 모른 척을 해야지 하면서 잠든 척을 한다. 사람들이 돌아가고 난 다음 살며시 일어나 양말을 보면 비어 있었다.
시골에서 성탄절은 마을 잔칫날이었다. 요즘으로 보면 마을 사람들 앞에서 성탄절 기념공연을 한다. 성구를 외우고 독창과 연극을 한다. 연극의 내용은 예수의 탄생이었다. 예수님은 아기라 베개로 작고 예쁘게 만들지만 단연 그날의 주인공은 마리아였다. 시골에서 어떻게 그런 하얀 옷이 있었던지, 하얀 옷을 입은 마리아를 보면서 우리는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온 줄 알았다. 마리아의 흰옷은 우리가 입었던 거무스레하고 낡은 옷과는 정반대였다. 부러운 생각보다는 모든 게 신비스러워서 꿈꾸는 것 같았다.
김종길 시인의 「성탄제」가 있다. “옛것이라곤 거의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 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눈 내리는 도회지에서 어릴 때 자신을 위해서 눈을 헤치고 아버지가 따 오신 산수유 열매를 생각한다. 아버지의 따뜻한 사랑을 되새기면서 성탄제 가까운 어느 날 시인은 휘휘 날리는 눈발을 보면서 추억에 젖어 있는 것이다.
긍휼이라는 말이 있다. 불쌍하고 가엾게 여겨서 도와준다는 뜻이다. 좋은 의미이기는 하지만 시혜(施惠)의 의미를 떠올리면 기분 나쁘게 들릴 수도 있다. 달리 생각하면 긍휼은 애끓는 마음이다. 내가 보고 있는 사람이, 내가 보고 있는 짐승이 너무도 마음을 아프게 해서 애가 끓는다. 그래서 긍휼을 자궁 속에서 아이를 보호하고 있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풀이하는 사람들도 있다. 성탄절 전야에 꾀죄죄하고 새까만 얼굴로 잠든 우리를 보는 어머니의 마음은 긍휼일 것이다. 그렇게 유년의 성탄절 아침은 긍휼로 가득했다.
초등학교 친구가 서울의 아름다운 성탄 트리를 단톡에 올렸다. 신세계백화점, 샤롯데가든, 서울광장, 롯데월드, 타임스퀘어, 갤러리아백화점 등 누가 봐도 아름다운 트리다. 연인들이 찾을 수밖에 없는 아름다움이 주렁주렁 달렸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추억 속에 켜진 성탄 트리가 가장 아름답다. 성글기는 하지만 긍휼이 여기저기 달려서 예쁘게 반짝거리는 성탄 트리가 마음 깊은 곳에 있다. 요즘같이 어려운 때에 이런 긍휼의 성탄 트리가 여기저기 반짝이면 좋겠다. 오랜 뒤에 소금같이 반짝일 추억의 돌탑이 여기저기 쌓였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