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 아연 광산의 칠흑 같은 갱도 어디에선가 천둥 치는 소리가 났다. 갱도가 무너졌다.작업 중이던 광산 경력 수십 년의 베테랑 작업반장 박씨는 작업인부(후산부)를 데리고 황급히 대피했다. 후산부는 광산 경력이 나흘밖에 안 되는 신참이었기에 비상시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두 광부가 대피한 장소는 땅속에서 여러 개 통로가 연결되는 인터체인지 같은 곳이었다. 지하 190m인 이곳은 면적도 꽤 널찍했다.
일단, 그곳에서 정신을 차린 그들은 다음으로 탈출 방법을 모색해야 했다. 이리저리 여러 탈출구를 찾아보았으나 허사였다. 지상과 갱도를 이어주던 무전도 끊긴 상황이었다. 가지고 있었던 폭약으로 발파를 시도했지만, 엄청난 양의 암석을 헤쳐 나가기엔 무리였다. 그들은 곧 ‘전략’을 바꿨다. 체력 보존을 위해 포기할 거면 빨리 포기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장거리 육상 선수 같은 일종의 체력안배 작전이었다.
그 포기 작전도 수월한 작전은 아니었다. 생존 전략도 전략이지만, 외부에서 ‘구조를 포기하면 어떡하나’하는 두려움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작업반장은 “광부들은 다른 직종보다 동료애가 특히 강하다”며 이를 철석같이 믿었다고 한다. 우선 그 둘은 갱도 내 여건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지식과 기술을 총동원했다. 갱도 안에 나뒹굴던 비닐과 산소용접기, 평소 소지했던 작은 라이터도 생존에 도움이 됐다.
비닐로 작은 텐트를 지었고, 젖은 나무토막을 말려 모닥불을 지폈다. 모닥불은 내부 산소량을 감안하여 잠깐씩 피웠다. 공기 다음으로는 물을 확보해야했다. 챙겨간 물 외에도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받아마셨다. 배탈이 났지만 먹을 거라곤 방울 물밖에 없으니 도리가 없었다. 배터리를 아끼느라 헤드랜턴을 끄고 절대 암흑을 견디었다. 나중에 구조 신호를 보내야 하니까. 동료 또한 반장이 제시한 매뉴얼을 잘 따라 주었다고 한다.<공기 들어오는 쪽을 찾아라. 물이 나오는 쪽으로 대피하라. 공간을 이용해 기다려라>
무엇보다 믹스커피 몇 봉은 더없이 귀한 비상식량이 됐다. 믹스커피에는 미량이지만 당류와 포화지방 등의 영양소가 들어 있고, 체내 전해질의 균형을 조절해주는 나트륨도 소량 포함돼 있다. 고산 등반가들이 애용하던 비상용품이다. 커피를 약 복용하듯 여러 번에 걸쳐 나눠 마시면서 배고픔을 달랬다. 의학계에 따르면, 인간의 극한 상황은 333 법칙이라고 한다. 공기 없이는 3분, 물 없이는 3일, 음식 없이는 3주 동안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과 어둠, 그리고 추위는 그들의 편이 아니었다. 산소절단기와 라이터의 가스가 떨어졌다. 땔감 나무도 몇 토막이 남지 않았다. 아껴서 나눠마시던 커피믹스와 물도 바닥이었다. 아무리 베테랑이라고 하지만, 그 떨어지는 랜텐의 배터리처럼 희망의 빛을 잃어갔다. 동료를 다독거릴 의욕마저 녹아내렸다. 헤드랜턴 배터리마저 끝내 희미하게 깜빡이던 날, “이젠 희망이 없는 것 같다”는 말이 처음으로 배어 나왔다. 그러는 도중, 비몽사몽간에 희미한 발파 소리를 들었다.
동료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단다. “환청이라도 일단 발파 소리를 들었으니 안전모를 쓰고 10m 정도 뒤로 물러나는 도중에 꽝 하면서 불빛이 보였다”며 이 때 둘은 부둥켜안고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고 한다. 박 반장은 구출되어 갱도 밖을 나서면서, ‘밖에서도 수많은 동료들이 자신들을 구출하기 위해 고생을 많이 했구나’하는 생각에 눈물이 나왔다고 한다. 이처럼 생존 매뉴얼을 잘 이행하고, 발 빠른 구조 활동을 펼치면 얼마든지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이 뻔한 사실을, 우리는 열악한 갱도 속으로 다시 들어가 배우게 된다.
오늘 저녁은 커피믹스 한잔 진하게 타서 마시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