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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중(시인)

김신중의 영주 톺아보기 [44] 경륜과 노탐

2022. 11. 28 by 영주시민신문

김장철의 풍경을 본다. 젊은이들이 열심히 움직이는데 그 집의 제일 어르신은 젊은이들의 움직임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면서 몇 마디 충고를 던진다. 나이가 들어 미각은 좀 예민하지는 못하지만, 어림짐작으로 손맛을 만들어가는 품에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그렇게 김장이 끝나고 나면 어르신들은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끙끙 앓는다. 절인 배추나 김장을 이리저리 옮기는 힘은 없으나 젊은이들이 지나칠 수 있는 부분을 콕콕 집는다. 김장의 경륜이 느껴진다.

불교에 법랍(法臘)이란 말이 있다. 출가하여 승려가 된 해부터 세는 나이다. 그냥 시간만 지나면 얹어주는 나이가 아니다. 스님들이 여름 장마 때 외출하지 않고 함께 모여서 수행하는 일을 하안거(夏安居)라고 하는데, 하안거를 마치면 법랍이 가장 높은 어른이 스스로 자신의 허물을 묻고 청정함을 인정받은 뒤 서로 덕담을 나누면서 법랍 한 살을 먹는 것이다. 세월만 지난다고 먹는 나이가 아니니 불가에서는 법랍이 높은 스님을 상랍(上臘)이라 하여 존경한다.

경륜의 어원은 ‘집을 다스리고 관리하는 것’이다. ‘세상을 다스리는데 필요한 능력이나 경험’으로 확장된 말이다. 소설가 김주영에 의하면 스트라디바리 가문이 만든 바이올린이 값어치가 있는 것은 뼈저린 경륜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빙하기의 알프스 산록에서 거센 비바람과 천둥소리, 뼛속까지 스며드는 혹한과 눈보라를 견디느라 무릎을 꿇고 옆으로 자란 나무로 바이올린을 만든다. 이러한 경륜이 바이올린 속에 들어 있다는 것이다.

사람도 바이올린과 마찬가지다. 경륜은 쉽사리 얻을 수가 없다. 사람이 나이가 든다고 다 경륜이 있는 것도 아니다. 어떤 분야든지 혹한과 눈보라를 견딘 사람들에게 경륜의 단단함이 조금씩 차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법랍이 높은 스님들이 존경의 대상이 되듯이 경륜이 있는 사람은 그 사회의 어른으로 대접받아 마땅하다.

『총,균,쇠』의 저자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정년제라는 시대착오적인 제도를 폐지하고 고령자에게 고용기회를 확보해 인적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어르신이라 할지라도 혈기 왕성하고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라면 그들의 경륜과 지혜를 높이 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구가 점점 줄고 노인 인구의 숫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미래사회를 예견하는 학자의 견해라 눈길이 간다.

노탐은 경륜 있는 사람들에게 늘 경계해야 할 말이다. 공자는 군자삼계(君子三戒)에서 청년 시절에는 색욕을, 장년기에는 다툼을, 노년기에는 탐욕을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한자어 욕(慾)을 ‘골짜기(谷)에서 흐르는 물을 모두 마시려는(欠) 마음(心)’으로 풀이하거나 ‘골짜기(谷)는 없이(缺) 산봉우리만 있는 마음(心)’으로 풀이하든지 사람의 욕심이 끝이 없음을 이른다. 골짜기의 물을 다 마시려는 한 인간의 모습을 상상하니 공자의 말 앞에서 옷깃을 여미게 된다.

경륜(經綸)과 노탐(老貪)은 동전의 양면이다. 같은 일을 해도 보는 사람에 따라 경륜이라고도 하고 노탐이라고도 한다. 그러니 발 한 발자국 띠는 지점이나 관점에 따라 경륜도 되고 노탐도 될 수 있다. 증자는 “조정에서는 벼슬이 제일이고, 시골에서는 나이가 제일이다. 세상에서 어른 노릇 하기에는 덕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권력이나 나이만 내세우다 보면 노탐이 되기가 십상이지만 경륜 있는 사람은 덕스러움으로 어른 노릇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르네 마그리트의 『투시』는 알을 보면서 새를 그리는 그림이다. 이런 것을 통찰력이라고 하는데 사물을 환히 꿰뚫어 보는 능력이다. 경륜 있는 사람들도 노화를 피할 수는 없다. 근육의 힘은 떨어지고 건망증은 찾아와서 사람을 괴롭게 한다. 그러나 사물이나 사람에 대한 통찰력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경륜 있는 사람의 눈은 사물을 관통하는 엑스레이와 같다. 사람이나 사상(事象)에 대해서 통찰력 있게 바라보는 힘이 있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걸어 다니는 도서관이라고 한다. 우리 사는 영주 땅에도 이런 분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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