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김신중의 영주 톺아보기 [38] 교성곡 「안향」 공연 톺아보기 < 김신중의 영주 톺아보기 < 오피니언 < 큐레이션기사 - 영주시민신문

상단영역

뉴스Q

기사검색

본문영역

김신중의 영주 톺아보기

김신중(시인)

김신중의 영주 톺아보기 [38] 교성곡 「안향」 공연 톺아보기

2022. 10. 14 by 영주시민신문

음악으로 듣는 동방 성리학의 비조(鼻祖) 안향 선생의 이야기, 교성곡(交聲曲) 「안향(安珦)」이 공연되었다. 교성곡은 칸타타의 번역어인데 성악곡의 한 형식으로 독창, 중창, 합창과 기악 반주로 이루어진다. 이번 공연에서는 내레이터가 줄거리를 이야기한 다음 영주심포니오케스트라의 연주에 따라 독도오페라합창단과 세 명의 성악가가 독창, 중창, 합창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초청공연을 제외하고 보면 영주에서는 규모가 꽤 큰 공연이었다.

서곡으로 ‘구름에 마음을 태우고’가 웅장한 합창으로 울려 퍼졌다. 순흥에서 태어나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가게 된 안향 선생을 노래한다. 부패하고 무능한 나라에서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 고민하는 모습이 독창, 중창, 합창으로 이어진다. 충렬왕은 원나라 공주와 혼인하여 원의 부마국이 되면서 굴욕의 역사는 시작됐으나 원나라 공주도 이국에서의 외로운 삶을 번민으로 보낼 때 공주와의 유일한 인간적 친분을 유지한 분이 안향 선생이다.

충렬왕과 공주를 모시고 원나라에 가게 된 안향 선생은 주자학에 심취했고 주색에 빠진 왕에게 고려의 국왕임을 깨닫게 한다. 공주는 죽고 세자의 분노를 한탄하며 ‘유국자제생문(諭國子諸生文)’를 회헌실기에 남기고 6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다. 충렬왕은 문성(文成)의 시호를 내려 선생의 뜻을 후손에게 알렸고, 주세붕 선생은 ‘백운동서원’을 건립하고 4천여 명에 달하는 인재가 배출되었다는 메시지를 전하면서 웅장한 합창은 끝을 맺는다.

교성곡 형식으로는 초연된 이번 공연은 무척 의미가 있었다. 영주에서 이 정도 규모의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꾸려 공연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래도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음악 분야이다 보니 단원을 꾸리는 데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개인의 전문성과 함께 다같이 모여서 음악의 완성도를 높이기는 더더욱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 공연을 지휘한 분이나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합창 단원은 박수받아 마땅하다. 마지막 장면에서 “우리 함께 새길을 열자.”는 코러스는 공연의 새길을 가자는 착각이 들었을 정도다.

안향 선생의 삶을 핵심 테마로 설정했다는 것도 눈여겨볼 일이다. 일반적으로 극이나 음악은 사람들이 솔깃해하는 내용이 토대가 된다. 비장해서 눈물이 나거나 재미가 있어 웃음이 끊이지 않는 내용을 선택하는 것이 공연의 성공을 결정하는 기본 상식임을 누구나가 안다. 눈앞에 보이는 인기나 경제성만을 따졌다면 딱딱한 내용을 테마로 잡을 수가 없다. 공연의 상식을 뛰어넘어 안향 선생을 음악으로 자리매김하고 싶은 열정 때문임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원작에서 제국대장공주는 좀 애매한 부분이 있었다. 안향 선생과의 인간적인 친분으로 사람의 도리를 다한 선생의 인간다움을 드러내고 싶은 의도이기는 해도 역사적 사실을 떠나 전체 스토리에서 생뚱맞은 느낌이 들었다. 물론 여성이 등장하는 무대가 없어서 다양성이나 흥미가 반감될 수 있다는 염려는 있겠지만 원작자의 정밀한 설정이 필요해 보였다.

교성곡의 특징이기는 해도 내레이터와 성악가의 움직임, 표정이 너무 정적이어서 관객과의 교감이 부족한 것도 눈에 띄었다. 무대와 관객의 심리적 거리는 가까울수록 친근감이 간다.

안향 선생의 교성곡이 공연될 즈음 선비세상에서는 영주 출신의 가수 박창근의 공연이 있었다. 아마 많은 시민이 공연을 보러 갔을 것이다. 교성곡과 대중가수의 공연을 비교할 수는 없지만 교성곡 「안향」은 흥미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 조선의 건국 이념으로까지 성장한 성리학을 도입한 선생을 무대에 올리면서 남달랐던 지휘자의 고민이나 단원들의 노력, 성악가의 땀을 생각하면 흥미나 경제성으로 공연을 판단하는 잘못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

이제 우리는 흥미를 넘어서서 문화적 자산을 생각할 때가 됐다. 시민이 책임을 느끼고 관객이 됐을 때 교성곡의 형식을 넘어서 오페라로 발전할 수도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성공한 공연이라는 경제적인 안목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서 영주의 문화적 유산을 축적해 나가는 데 한몫을 한다는 신념으로 공연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