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김신중의 영주 톺아보기 [35] 철탄산 정담(情談) < 김신중의 영주 톺아보기 < 오피니언 < 큐레이션기사 - 영주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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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중(시인)

김신중의 영주 톺아보기 [35] 철탄산 정담(情談)

2022. 09. 22 by 영주시민신문

이른 아침에 철탄산을 오른다. 나팔꽃을 시작으로 호박꽃, 메밀꽃, 싸리꽃, 도라지꽃을 차례로 만난다. 노랗게 익어가는 탱자도 소담스럽다. 늘 만나는 사물인데 철탄산을 오르다 보면 이 모든 것이 무척 정감 있게 다가온다.

철탄산은 영주의 진산(鎭山)이다. 진산은 고을의 중심이 되는 산으로 뒤에서 눌러 보호한다는 뜻이 있다. 진산의 뜻을 모르더라도 철탄산을 오르다 보면 철탄산이 어머니와 같이 영주를 품고 지켜주는 산이란 걸 은연중에 안다.

철탄산에서 내려다 보면 우측에서부터 관사골, 숫골, 신사골, 향교골, 보름골이 가지런하게 자리 잡고 있다. 관사골은 영광여중으로 올라가는 곳이다. 숫골은 영광여고로 올라가는 방향이며, 신사골은 영주초에서 산기슭으로, 향교골은 동산교회에서 영주여고로 길 양쪽에 위치하며, 보름골은 가장 동쪽에 있다. 1930년대 영주 시가지 사진을 보면 대부분 마을은 철탄산 기슭에 자리를 잡았고, 현재 시내 지역은 대부분이 논이었다.

이렇게 보면 철탄산은 영주의 어머니와 같다. 어머니가 치맛자락을 자식에게 내주듯이 철탄산 자락은 골짜기를 영주 사람들에게 내주고 북쪽 바람을 막아준다. 철탄산을 다니다 보면 작은 기왓조각을 많이 본다. 성재가 있으니 누구나 산성을 쌓은 흔적임을 알 수 있다. 연세가 많은 어르신들이 어렸을 때는 명절이면 성재에 올라 기왓조각을 주워서 가루로 만들어 명절에 사용할 놋그릇을 닦았다고 한다. 산성의 위용보다 따듯한 정감이 있다.

서천에는 물길이 있어 적을 막았다. 지금이야 물이 얼마 없어 쉽게 건널 수 있다지만 옛적에는 물길이 꽤 깊었던 모양이다. 창진(昌津)은 서천의 두물머리로 순흥에서 흘러내리는 죽계천, 안정에서 흘러내리는 홍교천, 풍기에서 흘러내리는 남원천이 이 마을 앞에서 합류한다. 비가 많이 내리면 소금배가 낙동강을 따라 창진까지 와서 소금을 내리고 달구지로 순흥까지 운송했다. 물길로는 서천이, 산으로는 철탄산이, 그리고 영주사람들이 영주를 지켰다.

귀내에서 영광여중으로 넘어가는 재를 핑구재라 한다. 지금은 포장이 되면서 터널 아닌 터널로 바뀌었다. 겨울에 소백산에서 내려 부는 칼바람이 이 고개를 지나면서 핑핑 소리가 난다고 고개 이름을 핑구재라고 부르게 되었다. 순흥이나 단산 방향이나, 부석으로 가는 일부 사람들이 핑구재를 넘었다. 이 고개를 넘으면서 참 많은 이야기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성재에서 서천폭포로 내려오다 보면 가장 낮은 곳이 핑구재다. 산성을 쌓을 때도 이점을 고려했다. 가장 낮은 곳이 핑구재라 적군이 쳐들어온다면 핑구재를 넘을 것이니 성을 높게 쌓을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철탄산을 자주 찾는 어르신들에 의하면 옛날에는 핑구재에 돌이 산처럼 쌓여 있었단다. 돌을 쌓으면 소원을 이룰 수 있다고 해서 사람들은 재를 오가며 돌을 쌓았다. 태산같이 쌓였던 돌이 새마을사업으로 다 사라졌다고 하니 아쉬울 따름이다.

산과 어머니는 닮았다. 산자락에는 치맛자락이 있고, 산 둘레에는 치마 둘레가 있다. 물론 어머니에게는 산비탈이나 산기슭을 닮은 말은 없다. 그만큼 자연의 품이 사람 품보다 더 넓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철탄산 줄기는 호랑이가 잠들어 있는 모양이라고 해서 남성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산세의 흐름이나 넓은 품으로 봐서는 아무래도 날카롭기보다는 따듯하다. 골짜기마다 마을과 사람들을 품고 있으니 영주사람들의 어머니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한번은 철탄산을 오르는데 도토리가 툭 떨어졌다. 한 톨밖에 되지 않은 도토리를 철탄산은 온몸으로 받아주는 것이다. 도토리는 또르르 굴러가면서 길을 내고 있었다. 철탄산은 그렇게 아픔을 참으면서 길을 내주었다. 도토리의 툭 떨어지는 소리가 뒤통수를 내리갈긴다.

철탄산은 그렇게 영주사람들에게 길을 내주면서 어머니처럼 아픔을 참았단다. 등성이 어디엔가 이런 문구가 있다. “나무가 자라는 방향을 자르지 마세요.” 길을 가는데 거추장스럽다고 나뭇가지를 자르지 말라는 경계였다. 우리에게 길을 주고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찬 바람을 막아주는 철탄산을 다시 마음에 정감 있게 간직하면서 이른 아침 철탄산을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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