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이 한국의 일곱 사찰을 묶어 세계유산으로 등재한 때가 2018년이다. 이후 부석사는 일곱 사찰 맨 앞자리에서 밀려나지 않았다. 안양루(安養樓)로 오르는 무량수전 앞마당이 그 중심이다. 그래서 “百年幾得看勝景(백년기득간승경, 인생 백 년 중 몇 번이나 이런 경치를 구경할 수 있을까)”하는 김삿갓 탄식의 시판을 거기에 걸어두었다.
안양루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엎드려 있는 사바세계와 하늘가에 뜬 선계가 한 눈에 들어온다. 경내 지붕은 물론 멀리 펼쳐진 소백의 연봉까지 안양루 처마 끝과 이어져 있다. 극락정토의 풍광 다름 아니다.
안양루는 올라올 때 ‘문(門)’이던 것이, 올라서 보면 ‘누(樓)’가 되어 있다. 안양문(安養門)은 말 그대로 안양(극락)으로 들어서는 문이다. 이 누각을 지나면 바로 극락 세상이란 뜻이다. 그러나 극락의 길이 그리 만만하지 않다는 뜻일까? 안양루로 오르는 계단은 엄청 높아 보인다.
이에 앞서 안양으로 오는 길목에 범종루(梵鐘樓)가 있다. 안양을 오르려면 반드시 거치는 누문(樓門)이다. 사찰 진입 공간의 중심을 잡아주는 건물이다. 그러면서 구품만다라(九品曼茶羅)를 수행하는 중책도 함께 맡겨져 있다. 또한 부석사 전체 건물의 기준이 될 뿐만 아니라 진입 축의 중문(中門)까지 겸하고 있어 팔방 시선의 배꼽으로 해석된다.
범종루의 앞모습은 2층 누각에 봉황이 날개를 활짝 편 팔작지붕이다. 그러나 뒤쪽 뜰에 서 보면 어느새 단층 전각의 맞배지붕이 되어 다소곳이 몸을 낮추고 있다. 손님을 공손히 모시려 함일까?
한옥 특유의 가로 배치형을 벗어나 누각이 세로로 배치되어 있다. 파격 중의 파격이다. 이런 파격은 지구상에서도 그 유래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런 이중의 파격에도 범종루는 어색하거나 지나치게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정형이 주는 지루함을 보정하는 역할을 한다.
게다가 범종루만큼 주변을 압도하고 강렬한 빛을 발하는 건물도 흔치 않다. 맨살을 확연히 드러낸 기둥의 육체미도 그렇고, 석양 나절에 따로 연출되는 실루엣 아트가 그렇다. 누각은 보통, 아래층은 게이트로 윗층은 실용 공간으로 활용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범종루 역시 누각의 요건을 갖춘 복층 구조로서, 아래층은 사람들을 안내하는 문이요, 윗층은 괘불을 걸고 법회를 할 때 마당을 연장해 주는 신축성 건물이 된다. 그만큼 누(樓)의 역할에 충실하다.
부석사는 진입 축 건물이 모두 연도의 중간에 서서 건물 안쪽으로 진입자들을 유도하는 구조이다. 일주문, 천왕문, 회전문, 범종루, 안양루가 차례대로 그러하다. 또한 그 건물들은 구품의 석단 위에 축조되어 있어 아래에서 보면 어느 것이랄 것도 없이 모두가 누각처럼 훤칠한 키 높이를 가지면서 누각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다. 이른바 봉황산이 만들어낸 ‘봉황루(鳳凰樓)?’들인 셈이다. 이들 가운데 누각 대표를 뽑는다면 범종루가 단연 1순위일 것이다. 1748년 건립 이래 근 300년 가까이 ‘범종루’로 불려왔다.
최근 문화재청이 부석사의 “안양루와 범종각을 보물로 지정”하겠노라고 예고를 했다. 그러면서 범종루를 누(樓)가 아닌 ‘범종각(梵鐘閣)’이란 이름으로 고시하여 혼란을 주고 있다. 부석사에는 범종루 옆에 이미 범종각이란 건물이 따로 있다. 사정이 그러함에도 문화재청이 특별한 설명 없이 ‘범종각’이란 명칭을 고시한 이유가 무엇일까?
조선 사대부들에게 누각은 ‘하늘과 통하는 곳’이며, 누정은 학문과 예술의 산실, 강학과 정신적 향유의 거점, 자연을 완상하는 풍류의 공간인 바 대단히 중요한 공간이다.
이런 연유로 안양각? 범종각? 이라는 호칭이 자체가 이런 고상한 품격의 훼손으로 이어지지 않을까하는 걱정과 당혹감의 기류가 지역민들을 중심으로 느껴진다. 특히나 별서(別墅)인 누·정·대(樓·亭·臺)를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준비하는 시점이어서 더욱 그런 기류가 거세지는 모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