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김신중의 영주 톺아보기 [33] 삼봉로 단상(斷想) < 김신중의 영주 톺아보기 < 오피니언 < 큐레이션기사 - 영주시민신문

상단영역

뉴스Q

기사검색

본문영역

김신중의 영주 톺아보기

김신중(시인)

김신중의 영주 톺아보기 [33] 삼봉로 단상(斷想)

2022. 09. 02 by 영주시민신문

삼봉로를 아십니까. 영주에서 꽤 자주 본 도로명 중에 신재로, 회헌로, 의상로가 있다. 풍기 쪽으로는 신재로, 순흥 쪽으로는 회헌로, 부석 쪽으로 가는 길이 의상로다. 삼봉로는 가흥동 나무고개 교차로와 상망동 상망 교차로를 잇는 도로명으로 2019년에 우회도로를 내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대부분의 도로명이 2009년 도로명 개정 당시에 생겼으니 사람들이 삼봉로를 잘 알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기고도 역사 속에 묻혀 있다가 450여년이 지난 고종 때에야 공신 칭호를 돌려받은 삼봉의 생애와 대비가 돼 좀 착잡한 마음이다.

가끔 삼봉로를 달리면서 삶의 길을 묻는다. 아니, 길을 묻는다기보다는 삼봉 정도전의 늘 새로운 미래를 꿈꾸면서 세상을 변화시켰던 정신을 생각한다. 삼봉은 미래를 디자인한 분이셨다. 한양을 디자인했으며, 디자인하고 그린 그림을 바탕으로 국가를 통치했다. 삼봉의 ‘감흥(感興)’이란 시가 있다.

“예부터 누구나 한 번 죽음이 있을 뿐인데/목숨을 붙여 안락하게 살고 싶지 않네/ 천년이 지나 광막하고 광막한 오늘날에도/기질 뛰어남과 용맹도 가을 하늘에 비끼어 있네” 삼봉은 안락하게 살지 않으면서 조선을 하나하나 디자인해 나갔던 것이다.

삼봉집에 실린 농부와의 대화는 고려의 관료집단을 통렬하게 비판한 대화로 유명한데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농부들은 유배를 온 삼봉에게 죄를 지은 연유를 묻는다. “탐욕을 부리거나 권력자에게 빌붙어서 아첨 떨다가 하루아침에 실세(失勢)하여 마침내 죄를 얻은 것이 아닌가. 정도(正道)가 아닌 방법으로 직위를 낚아챈 다음 속임수가 바닥나고 죄악이 드러나서 죄를 얻은 것이 아닌가. 역량이 모자라는 것을 헤아리지 못한 채 큰소리치기를 좋아하여 낮은 지위에 있으면서 윗사람의 뜻을 거슬렀으니, 이것이 아마도 죄를 입은 연유일 것이다.”

유배지인 나주에서 농부들과 나눈 대화로서 관료사회를 비판함과 동시에 지혜를 갖춘 백성들에 대한 신뢰가 들어 있는 장면이다. 이때 바라보았던 백성들의 삶은 삼봉의 정치 철학에 많은 영향을 주게 된다. 조선경국전에는 “백성은 지극히 약하지만 힘으로 위협할 수 없고 지극히 어리석지만 지혜로써 속일 수 없는 것이다. 백성이 인군을 버리고 따르는 데에 있어서는 털끝만 한 여지도 용납되지 않는다.”고 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 2항과 통하는 언급이 있으니 놀라울 따름이다.

“여기 미친 사람들이 있다. 부적응자, 반항아, 문제아들, 우리 사회의 틀에 맞지 않는 사람들, 사물을 다르게 보는 사람들. 그들은 정해진 규칙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현재에 안주하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인용하거나, 그들을 부정하거나, 추켜올리거나, 비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을 무시하는 것이다. 그들은 세상을 바꾸기 때문이다. 자기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미친 사람들이야말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애플의 광고 자막이다. 아인슈타인, 간디, 존 레넌, 밥 딜런, 피카소, 에디슨, 마틴 루터 킹 등 남다른 생각으로 세상을 바꾼 사람들의 얼굴이 지나가면서 자막으로 나온 내용이다. 이 광고를 보면서 삼봉 정도전의 이름을 넣어봤다.

놀라울 정도로 전혀 이상하지가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꿈을 꾸고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전 생애를 바쳤던 삼봉의 한 단면을 말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삼봉도 조선의 사관들에 의해서 폄하되고 왜곡되어 기록되기도 했지만 결국은 조선을 디자인한 설계자로 역사 속에 우뚝 서게 된 것이다.

삼봉에게 미래는 백성이요, 국가요, 혁신의 대상이었다. 영주인 삼봉의 삶을 돌아보는 영주사람으로서 정말 우리가 생각하는 미래 속에 영주, 영주 사람, 영주의 혁신이 진정한 의미에서 자리 잡고 있는지를 성찰해 본다.

“조존(操存)과 성찰(省察) 두 곳에 온통 공을 들여서/책속에 담긴 성현의 말씀 저버리지 않았네/삼십년 긴 세월 고난 속에 쌓은 업적/송현방 정자 한잔 술에 허사가 되었네” ‘자조(自嘲)’의 전문이다. 삼봉처럼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도 ‘한잔 술에 허사’가 되는 세상이니 다시 한 번 옷깃을 여미면서 ‘조존과 성찰’로 미래를 봐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