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배용호의 문화확대경 [238] 「선비 세상」 앞마당에서 < 배용호의 문화확대경 < 오피니언 < 큐레이션기사 - 영주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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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호의 문화확대경

배용호 (전 영주교육장)

배용호의 문화확대경 [238] 「선비 세상」 앞마당에서

2022. 08. 12 by 영주시민신문

<선비세상 개장합니다>라는 담백하고 세련된 현수막이 눈길을 끈다. 영주 최대의 국책사업이라는 「선비세상」이 드디어 문을 열게 되는 것이다.

「선비세상」은 영주시가 2008년 9월 문화체육관광부의 ‘광역경제권 선도프로젝트 3대 문화권 사업’에 ‘한문화테마파크’라는 이름으로 선정돼 추진해온 사업이다. 2013년부터 순흥면 일대 약 30만 평 부지에 100여 동에 가까운 건물을 세워 한문화 밸리를 만들었다.

한국문화의 본고장에 ‘테마파크’라는 영문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에 「선비세상」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사용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이름에 걸맞은 ‘선비매화공원’도 조성했다. 누구는 난초, 대나무, 국화를 추가로 식재하여 ‘사군자공원’으로 가꾸어나가야 한다는 주장이 최근 제기되고 있으나, 욕심을 많이 낼수록 그 선명성이 약해진다는 반비례 방정식을 각오할 일이다.

‘은어(銀魚)’ 하나로 대표적인 여름 축제를 성공시키고 있는 이웃 고을 단체장은 “다른 지자체에서 따라하고 있는 물고기 축제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일찍이 결론 내린 바가 있다. 그의 예측대로 내성천 하류의 여러 지자체가 의욕적으로 시작했던 물고기 축제는 지금 모두 사라지고 없다. 쏘가리, 붕어, 가재, 피라미 등 모든 물고기가 대상이다 보니 어느 하나 특별한 느낌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힘이 잔뜩 들어간 ‘곤충축제’보다는 ‘나비축제’나 ‘산천어축제’ 같은 단일 품목 축제가 성공하는 이유라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한스타일 6대 분야’라고 부르며, 이른바 육한(六韓)을 골고루 나누어 놓은 「선비세상」이 귀담아 들을 내용이다. 예비 개장을 다녀온 사람들의 공통적인 소감이 킬러콘텐츠가 없다고 지적한다. 한 바퀴를 다 돌아도 특별히 뇌리에 남길 내용이 없다는 것이다.

골고루 갈랐기에 서로 간 사이는 좋았을지 모르나, 뭔가 가슴 찡한 구석이 없어 관광객들은 뭣 때문에 비지땀을 흘리며 그 언덕바지를 올라야 하는지를 고심하게 된다. 소수서원에서 선비촌-선비문화수련원-「선비세상」까지 이어지는 지루한 한옥 터널은 한(韓) 스타일이기 이전에 한(하나) 스타일로 연결되어 있어 질리게 한다는 지적이다.

이를 중화시키기 위해 중앙 「선비마당」을 ‘나랏말ᄊᆞ미’ 공원으로 만들자고 제안한 바가 있다. 그래서 희방사 훈민정음 해례본 판목을 연상케하는 나랏말ᄊᆞ미 상징탑은 물론, 벤치, 테이블, 장승 등 모든 조형물을 나랏말ᄊᆞ미 디자인화할 것도 아울러 제시한 바가 있다. 즉 나랏말ᄊᆞ미를 킬러콘텐츠로 개발해 보자는 취지이다. 그리고 방문객(특히 어린아이, 노약자)을 실어 나를 반 장난감형의 모노레일 설치도 검토해 봄직하다.

「선비세상」은 영주의 선비 브랜드가 전 지구촌 또는 그 이상의 세상에 번져나가기를 기대하면서 만들어낸 네이밍이다. 그리고 이를 상징해 내야 하는 것이 ‘로고’이다. 그래서 ‘로고’만 봐도 그 현장이 단번에 짐작되어야 한다. ‘K-문화’의 랜드마크를 지향해 온「선비세상」에 갑자기 지글거리는 땡볕이 상징된다면, 그리고 엉뚱한 땅벌이 기어오른다면 이처럼 황당한 일도 없을 것이다.

심플이 대세인 현대의 로고에 복잡한 세가지 그림이 들어가는 것도 의외인데다, 로고에 장식된 태양(Sun)을 이상적인 깨달음, 꿀벌(Bee)의 근면과 지혜의 결합이라는 억지 해석은 선비정신의 굴욕이라는 평가가 일찍부터 나돌았다. 아이들의 삼행시 같다는 지적도 있었다. 로고는 설명을 들어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보고 느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보다 훨씬 크고 너른 범주의 ‘세상’을 월드(World)로 축소 번역함에도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보다 큰일은 외국 관광객이 이런 영문 표기를 보고 경악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는 점이다. 한국을 대표할 K-문화의 대표적인 콘텐츠로서의 오점이 되지 않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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