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리지』는 1751년, 실학자 이중환이 전국을 현지답사 한 토대로 편찬한 조선 최고의 지리서이다. 이 책 경상도 편의 첫 귀절은 「慶尙道地理最佳(경상도는 지리가 가장 아름답다)」라고 시작하고 있다. 또한, 터를 잡고 살 만한 땅을 고르는 조건으로는, 지리가 최우선이고, 생리가 버금이며, 그다음이 인심이고, 그다음은 산수라고 했다.
그리고는 “우리나라 팔도 가운데 인심이 순박하고 두텁기로는 평안도가 으뜸이나, 그다음 경상도는 풍속이 질박하고 진실하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어서, (경상)좌도에는 벼슬한 집이 많고 우도에는 부자가 많으며 간간이 천 년이나 된 유명한 마을이 있다.
“물은 재물과 복을 맡은 것이므로 큰 물가에는 부유한 집과 유명한 마을이 많다”고 되뇌고 있다. 이때, 이중환이 제시한 부자 터는 당시 조선 양반층 사이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으므로, 그의 책 『택리지』는 일약 조선조 ‘베스트셀러’가 됐다.
또, 그는 태백산과 소백산 아래 양백지간을 조선 최고의 명당으로 지목하고, 이곳에 대한 소개에 책자의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그 내용을 여기에 가감 없이 발췌해 본다. 오지마을을 지키고 가꾸어온 많은 이들의 긍지가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 조선 팔도의 명산은 금강산, 오대산, 태백산, 소백산, 속리산, 선유산, 덕유산, 지리산을 꼽는데, 여기에 칠보산, 묘향산, 가야산, 청량산을 더해 은둔 수양하기 좋은 곳을 모두 열두 곳으로 친다.
• 자고로, 바닷가에 사는 것은 강가에 사는 것만 못하고, 강가에 사는 것은 시냇가에 사는 것만 못하다. 그리고 시냇가의 삶에는 반드시 큰 고개에서 멀지 않아야 한다.
• 양백의 남쪽에 있는 예안, 안동, 순흥(順興), 영천(榮川, 영주), 예천 등의 고을은 신령(神靈)이 서린 복된 땅이다. 큰 산 아래 평탄한 산지와 넓은 들녘은 밝고 수려하며 흰 모래와 단단한 흙은 기운은 한양과 같다.
• 영천(榮川) 서북쪽에 순흥부(順興府)가 있고, 죽계는 소백산에서 흘러나오는데, 이곳은 들이 넓고 산이 야트막하여 맑고 밝다. 상류에 백운동서원이 있고, 여기에 문성공(文成公, 安珦)을 모신다. 명종 때 주세붕이 풍기를 다스리던 시기에 창건한 서원이다.
우리나라 서원의 시초이다. 서원 앞 시냇가에 누각이 서 있어 훤히 트인 고을의 빼어난 풍경을 조망할 수 있다. 이 고을 산천과 경치, 토지와 생리가 안동의 하회 마을과 막상막하이다. 그러므로 “양백산 아래, 황수 유역은 참으로 사대부가 살 만한 곳이다.”
• 소백산은 허리 위로 바위가 없어서 웅장하면서도 살기가 없다. 남사고가 갑자기 말에서 내려 절하며 “이 산은 사람을 살리는 산이다”라고 했고, <십승기>라는 글을 지어 ‘소백산은 전란을 피할 수 있는 제일가는 땅’이라고 썼다.
• 태백산에서 산맥 등성이가 좌우로 갈라져 뻗어간다. 오른쪽 줄기 소백산 아래 큰 고개가 죽령이고, 그 아래 욱금동은 아름다운 산수 경관이 수십 리에 펼쳐진다. 비로봉 쪽으로는 비로전(毘盧殿, 비로사)이 있는데, 오래된 신라 사찰이다.
• 태백산 아래에는 내성(奈城), 춘양(春陽), 재산(才山), 소천(召川)이 있으니 모두 깊은 산골이다. 백성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며, 강원도 바닷가의 생선과 소금을 교역하고 있다. 여기도 전쟁을 피하거나 세상을 피해 숨어 살만하다.
• 청량산은 태백산맥의 한 줄기가 들판으로 뻗어 내려와 강가에서 뭉친 산으로, 멀리서 보면 봉우리 두어 개의 흙산일 뿐이지만, 골짜기 안으로 들면 만 길 석벽이 높이 둘러쳐 있어 엄숙하고 기이하기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산 안쪽 난가대(爛柯臺)는 고운 최치원이 바둑 두던 장소인데, 바둑판 바위가 있으며, 한 노파의 석상이 석굴 안에 안치되어있다. 고운에게 밥을 지어주던 여종이라 전해온다.
연대사(蓮臺寺, 청량사)에는 김생이 손수 쓴 불경이 많다. 한 선비가 불경 한 권을 훔쳤는데 집에 이르자마자 역병에 걸려 죽었다. 집안사람들이 겁에 질려 즉시 절에 돌려주었다고 한다.
• 청량산은 작은 산이면서도 수양하기 좋은 명산 반열로 꼽혀 은둔자들이 깃들어 수양하는 곳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