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의 탁란에 대한 영상이 있었다. 홀로 부화를 하지 못하는 뻐꾸기가 붉은머리오목눈이의 둥지에 알을 낳고 새끼를 부화하는 영상이다. 뻐꾸기, 두견새, 검은등뻐꾸기, 벙어리뻐꾸기 등과 같이 남의 둥지에 알을 낳고 부화하는 새를 탁란조라 하고, 이들의 알을 품어 부화시키고 기르는 새를 숙주새라고 부른다. 숙주새 중에 우리 눈에 제일 많이 발견되는 종으로 붉은머리오목눈이가 있는데 다른 이름으로 뱁새라고도 한다. 숙주새 중에 자고새도 있는데 뱁새 종류의 작은 새로서 성경에도 자주 언급된다.
붉은머리오목눈이가 잠시 둥지를 비운 사이에 뻐꾸기는 남의 둥지에 몰래 알을 낳고 간다. 자기 둥지에 낳은 뻐꾸기 알을 알지 못하는 붉은머리오목눈이는 뻐꾸기의 알을 자기 알인 줄 알고 따듯하게 알을 품어주고 부화시킨다. 뻐꾸기 알은 붉은머리오목눈이 알보다 빨리 부화를 하게 되는데 먼저 부화된 뻐꾸기 새끼는 먹이를 독차지하는 것은 물론 붉은머리오목눈이 알을 둥지 밖으로 밀쳐서 떨어뜨리거나 부화된 새끼마저 떨어뜨린다. 좀 소름이 끼쳤다.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중에 ‘자고새가 나는 밀밭’이 있다. 고흐는 평생 그린 그림을 단 한 점밖에 팔지 못했던 불행한 화가였다. 37세에 생을 마감할 때까지 자고새처럼 홀로 외롭게 살았다. ‘자고새가 나는 밀밭’ 그림을 보면 고흐가 좋아했던 밀밭에 바람이 분다. 밀이 옆으로 누울 정도로 거센 바람이 부는데 그 위로 작은 자고새 한 마리가 날아오르는 것이다. 짐작건대 비록 내 삶이 힘들고 자고새처럼 미련하고 바보 같을지라도 그래도 한번만 비상해 본다는 의지를 담아서 그린 그림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유안진의 시집 「숙맥노트」에 수록된 시 ‘자고새’가 있다. “제 둥지에 몰래 낳아두고 달아난/ 種(종)이 다른 새알을/ 애써 품어 키운다는 바보새/ 밀밭을 그리고 새 한 마리를 더 그린 반 고흐/ 그 새가 하필 자고새란다/ 司祭(사제)의 아들도 그림사제였네.” 고흐의 ‘자고새가 나는 밀밭’을 언급하면서 자고새를 바보새라고 했다. 그렇게 살아가는 고흐를 그림을 그리는 사제라고 했다. 시인은 바보새 고흐를 성직자와 같은 반열에 올려놓은 것이다.
유안진 시인은 ‘자고새’에서 숙맥을 노래한다. ‘숙맥(菽麥)’은 ‘숙맥불변(菽麥不辨)’의 준말로 ‘콩하고 보리를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사리 분별을 하지 못하는 어리석고 못난 사람’을 의미한다. 어렸을 때 ‘야, 이 쑥맥아’라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란 터라 듣기에 어감이 별로 좋지 않은 말이기도 했다. 시인은 70대 중반에 이 시집을 상재하면서 숙맥을 예찬하는 것이다. 목월 선생을 처음 만났을 때, 설렁탕에 소금을 넣지 못하고 먹는 시인에게 ‘저런 숙맥이’라는 말씀이 깊이 각인이 되었단다. 어린아이와 같은 숙맥을 시인은 예찬하는 것이다.
숙맥이라고 해서 항상 숙맥으로만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시오노 나나미가 쓴 「로마인 이야기」는 로마의 역사를 재미있게 기술한 15권의 방대한 책이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에서 출발하여 「로마 세계의 종언」으로 끝이 나는데 제14권의 책명이 「그리스도의 승리」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무도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그 시대의 숙맥이었다. 민중들의 열화와 같은 지지를 다 물리치고 스스로 십자가에 못 박히면서 죽음을 선택했다. 숙맥이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줄 알았는데 로마를 넘어서서 역사의 승리자가 되었다.
요즘 같은 때에는 숙맥같이 살아서는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다. 숙맥이 살아갈 공간이 없다. 모든 게 첨예하다. 이념도 첨예하고 지역 갈등도 첨예하다. 정치도 그렇고 경제도 날카롭게 우리를 공격한다. 어느 한쪽에 속해 있지 않으면 숙맥이 된다. 중간지대는 없어지고 양쪽 더욱 극단적인 곳으로 사람들이 몰린다. 어정쩡하게 서서 어리둥절하게 두리번거리다가는 사람구실을 할 수가 없다. 말 그대로 숙맥이 된다. 그러나, 그러나 숙맥이 그립다. 고흐의 자고새가 그립고, 유안진의 어린아이와 같은 숙맥이 그립다. 콩과 보리를 앞에 놓고 분간하지 못하여 조롱을 받고 싶은 생각도 든다. 그것을 우리 시대의 자학이라 말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