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펴낸 책, 『朝鮮の鄕土娛樂(조선의 향토 오락)』에 ‘화가투(花歌鬪)’라는 놀이가 소개되어 있다. 내용인즉, <카드 매수가 60매이고, 경상북도 영주에서 수시로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로써 ‘화가투놀이’는 그 중심 고장이 영주라는 뜻으로도 풀이할 수 있게 되었다.
‘화가투(花歌鬪)’라는 말을 그대로 풀이하면 ‘꽃 같은 노랫말로 서로 겨룬다’는 뜻으로, 이를테면, 누가 더 많은 시조(時調)를 정확히 외우고 있는가를 겨루는 우리의 민속놀이다. ‘시조 암기력 겨루기’ 정도로 풀이해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다른 말로는 ‘시조잇기놀이’, ‘시조연상놀이’, ‘가투(歌鬪)’, ‘가패(歌牌)’라고도 불리는데, 만드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시조 선택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나, 놀이 방법이나 규칙은 거의 비슷하다.
특히, 일제가 국권을 찬탈하고 우리 문화를 말살하려 하자, 우리말과 우리 시조를 지키기 위해 이를 널리 보급하였으므로 일제에 무언으로 항거하는 이른바 ‘민족놀이’가 성향을 띄기도 했다. ‘화가투’ 놀이는 1920년대 초부터 유행하던 놀이이며, 주로 안방에서 아녀자들이 중심이 되어 우리말(나랏말ᄊᆞ미)을 익히고 우리의 시가[時調]를 외우는 놀이 중심의 학습장이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가로 7~8cm, 세로 5~6cm의 두꺼운 종이에 시조를 적은 카드 120장이 한 조이다. 그중 60장(읽는 패)에는 시조의 초ㆍ중ㆍ종장을 모두 적고, 다른 60장(바닥 패)에는 시조의 종장만 적었다. 바닥 패 60장을 바닥에 아무렇게나 흩어 놓고 놀이를 이끄는 사람이 ‘읽는 패’의 초․중장을 읽으면 나머지를 ‘바닥 패’에서 종장 구절을 찾고, 가장 많이 찾아 외우는 사람이 우승자가 되도록 하는 게임이다.
우승자는 그다음 판에 놀이를 이끄는 사람이 되어 다시 시작한다. 그리하여, 참여하는 사람들 모두가 놀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시조를 외우도록 하는 교육적 효과가 내재 되어 있는 일종의 놀이학습이다. 더구나 시조에 깃들인 우리 조상들의 정신과 기개, 그리고 아름다운 시적 정서를 체험하면서 조상들의 선비정신을 계승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또한 차분히 진행되는 놀이 과정을 통해 정서가 안정될 수 있으며, 시조를 많이 외워 언어생활을 윤택하게 한다는 여러 가지 장점을 가진 민속놀이이다.
60장 정도이던 화가투 놀이는 나중에 100여 장 정도로 그 규모가 확대되었으며, 조선일보의 ‘새봄 첫머리 현상 가투대회, 동아일보의 ‘부인 가투의 밤’ 등 언론사가 연관된 화가투 전국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이는 근대화가 급진적으로 이루어지던 19세기 이후 새로운 문화적 욕구가 늘어나면서 퇴폐적인 놀이가 아닌, 가족 단위의 구성원들이 수시로 영위할 수 있는 건전 놀이문화에 대한 필요성이 공감대를 형성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 속에서 화가투놀이의 등장은 당시 사라져가는 문학으로서 시조가 부흥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며, 개인이 아닌 다수의 놀이가 가능하기에 시조와 놀이의 융합적 가치가 돋보인다.
무엇보다도 시조를 익히기 위한, 이런 시조놀이가 우리 지방 영주를 중심으로 일어나게 된 배경에는, 안축, 주세붕, 박선장 등 우리 지방 출신의 탁월한 문장가 출현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한편 영주는, 향가-경기체가-시조로 이어지는 우리 고유의 시가(詩歌)가 발달한 고장이다. 신라의 모죽지랑가의 배경지이며, 현재까지 전해오는 고려 경기체가 3수 중 작자가 불분명한 한림별곡을 제외하면 관동별곡과 죽계별곡이 우리 고장 순흥 출신 안축의 작품이다. 게다가 조선조에도 주세붕을 비롯한 여러 시인이 연이어 탄생했으므로 우리 지방을 일러 ‘시가의 고장’이라 함에 손색이 없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