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배용호의 문화확대경 [234] 2002월드컵 4강신화와 「골든벨」 < 배용호의 문화확대경 < 오피니언 < 큐레이션기사 - 영주시민신문

상단영역

뉴스Q

기사검색

본문영역

배용호의 문화확대경

배용호 (전 영주교육장)

배용호의 문화확대경 [234] 2002월드컵 4강신화와 「골든벨」

2022. 06. 16 by 영주시민신문

「골든벨」하면, 100명의 고교생이 50문제에 도전하는 KBS-TV의 퀴즈 프로그램 ‘도전 「골든벨」’을 떠올린다. 그도 그럴 것이 990회를 진행하는 20여 년 동안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고, 독서·주부·선비·스타·통일·한민족골든벨 등 수많은 변종 「골든벨」을 탄생시키기도 한 장본이었기 때문이다.

그만큼의 인기는 아니었지만, 그보다 오랫동안 룸살롱이나 저명 식당 같은 곳에 전설처럼 남아있는「골든벨」이 있다. 그날 그 가게 모든 테이블 값을 자신이 치르겠다는 말이다. 요즘 말로 바꾸면 ‘한판 크게 쏜다’ 정도로 번역될 수 있으려나?

예전에는 이따금 「골든벨」을 울리는 갑부가 있었다. 저녁 늦게 여유 있게 나타나 여러 사람에게 짠~하는 기쁨을 선물하는「골든벨」은 소위 가진 자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같은 것이었다. 그날 그 가게 손님들은 소위 ‘복권 당첨자’가 되는 것이고. 종종 이런 일이 있었던 그 시절에는 술 마시는 도중에 공연히 출입구 쪽으로 버릇처럼 시선을 돌려대기도 했었다. 드물게는 최고 인기 연예인이 나타날 때 주인이 스스로「골든벨」을 마구 쳐대는 「대박골든벨」이 생기기도 한다.

당시의 「골든벨」 문화는 정통주점의 오랜 클래식 살롱 문화로 분류되어 있었다. 좀 역사를 지닌 유럽의 술집은 주방 앞에 아예 종을 매달아 둔다고 한다. <좋은 일, 기쁜 일 함께하고 싶을 땐 「골든벨」을 치세요>라는 은근슬쩍 강요 문구와 함께….

꼭 20년 전, ‘2002한일월드컵’은 첨부터 한일 대결 구도로 펼쳐졌기에 응원전도 첨부터 중반전 열기로 시작되었다. 그런 가운데 6월 18일 치러진 16강전에서 한국대표팀이 강호 이탈리아와 맞붙어 2-1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며 8강에 올라 열기도 상종가로 치솟았다. 거리는 오롯이 붉은 물결이 되었다. 회사들도 붉은 티셔츠를 내주며 일찍 퇴근시켰다.

우리 대표팀의 경기가 없는 나흘 동안에도 거리는 무조건 붉게 흔들렸다. 온 국민의 <대~한민국>이었다. 시민은 모두 거리로 흘러나왔다. 회사, 식당, 지자체별로 야외 응원장을 마련하고 멀티비전을 설치했다.

16강 진출 이후부터 무슨무슨 이벤트가 생겨나더니, 8강 진출을 축하하는 술집, 음식점, 백화점 등이 무료 이벤트 축하 잔치를 벌였다. 생맥주집은 물론 비빔밥, 칼국수집도 동참했다. 4강행을 위한 6월 22일(토) 저녁은 거리에 차량이 통제되는 등, 몰려드는 응원단들로 야단법석이었다. 어느 모로 보나 4강행은 턱도 없는 전력인데도 <4강 가즈아!>를 집집마다 붙여 놓고 <오! 필승 코리아!>를 주문처럼 외웠다.

필자가 속한 스포츠클럽도 이날은 경기를 당겨 마치고, K2라는 음식점 응원석에 일찌감치 자리 잡았다. 응원 열기는 예상을 능가했다. 8강이 한계라고 예측하던 사람까지도 그냥 앉아 있지를 못했다. 모두가 일어섰고, 의자 위에 올라섰다. 더 올라설 곳이 없자 테이블에까지 올라서서 고함을 질렀다. 이 환호성이 광주월드컵경기장까지도 들렸을까? 턱도 아닐 거라던 스페인과의 4강 진출 전에서 대표선수들은 이를 악물고 연장전까지 무승부를 버텨내었다.

두 시간의 접전 끝에, 승부차기로 5-3 승리가 확정되는 순간은 말 그대로 한반도가 떠나가는 줄 알았다. 대한민국 초유의 4강 신화가 달성된 것이다. 모두가 제정신이 아니었다. 끌어안고, 모자를 날리고, 젓가락을 던지다 못해 신발까지 벗어 던졌다. 게 중에서 나도 크게 소리쳤다. “골든벨이다! 골든벨! 오늘은 제가 골든벨을 울립니다!”

그리하여, 말로만 듣던「골든벨」을 내 평생 처음으로 경험하게 되었다. 월급쟁이로서는 그날의 「골든벨」 비용이 만만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20년 전, 그날 그 「골든벨」이 국민과 함께한 멋드러진 「골든벨」이라고 자화자찬하곤 한다.

2022년 6월 22일(수) 저녁은 K2골든벨 20주년 기념 ‘작은 골든벨’ 행사나 기획해볼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