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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중(시인)

김신중의 영주 톺아보기 [21] 관사골, 스토리가 되다

2022. 06. 06 by 영주시민신문

관사골은 영주역과 가까운 곳에 철도 관사가 지어지면서 불리게 된 이름이다. 관사는 일제강점기인 1935년 중앙선 공사가 시작되면서 공병대가 쓰는 건물로 지어졌고, 1942년 중앙선이 개통돼 기관사와 철도승무원들이 사용하면서 관사골로 불리게 되었다.

원래는 텅 빈 골짜기에 관사가 만들어졌는데 6·25 전쟁이 끝나면서 관사를 중심으로 집이 늘기 시작하더니 1961년 영주대홍수 이후에 지금은 많이 허물어졌지만 많은 집이 들어서게 되었다. 그리고 70년대에는 학교 자취생들의 자취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70년 중반에 관사골에서 2년간 자취를 한 적이 있다. 본채에서 달아낸 구석방이었는데 자취방 문을 나가면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석벽이 떡 버티고 서 있었다.

여름에 소나기라도 내리면 폭포처럼 물이 흘러내려 혹시 산사태가 나지는 않을까 걱정이 돼 잠을 이루지 못했던 기억, 한 겨울에 연탄불이 꺼져서 책을 한 장 한 장 뜯어 불을 지피면서 밥을 했는데, 결국은 맨 위는 설거나 질고, 맨 밑은 탄 삼층밥을 먹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도 청소년기에 관사골에서 경험했던 수많은 기억들이 스쳐 지나간다.

70년대 관사골 환경은 열악했다. 도로는 좁았고 불편했다. 새로 연탄을 들여 놓을라 치면 리어카로 골목 끝까지 실어와 높은 언덕배기에 있는 자취방까지 손수 한 장 한 장 올려야 했다. 대체로 자취방은 본채에 방을 달아내 만들었다. 집집마다 자취생이 있어서, 아침 등교시간이면 여기저기서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쏟아져 나왔다. 70년대 중반이라 나라의 형편은 어려웠다.

밝은 데보다는 어두운 분위기가 마을을 감싸고 있는 편이었다. 이때의 관사골은 스토리가 있기보다는 쇠락함의 흔적들이 적지 않아 어두운 느낌이 더 짙었던 것 같다.

오랜만에 관사골에 가 보았다. 여기저기 아름다운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낡고 허름해서 민망스러웠던 담벼락은 깨끗하게 정비되어 보는 이들로 하여금 산뜻함을 느끼게 했다. 철도 관사에는 국가등록문화재 안내문이 붙어 있었고, 도시 생활사적 가치가 크다고 했다. 날아갈 듯한 부용대와 잘 조성된 공원은 부용대와 어울리면서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고 있다.

“하늘 아래 첫 번째 관사골입니다.”로 시작되는 벽화 거리는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다. 옛날에는 허름하게만 느껴졌던 슈퍼, 정미소, 이발관, 떡방, 주민센터, 뒷골목까지 이야기 속에 머물고 있었다. 관사골은 지금 새로운 스토리를 쓰고 있다.

이야기는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이 나름대로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그 이야기를 세상 밖으로 꺼내는 게 사람이다. 이야기는 아무나 무턱대고 꺼낸다고 해서 이야기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흥미로워야 하며 재미도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야기의 미학이나 독특한 구조를 가져야 한다.

다른 말로 사물의 의미를 생성하고 통합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 이야기에 사람들은 감동을 받고 재미를 느끼고 찾아가게 된다. 이런 점에서 관사골은 마을 속에 숨어 있던 이야기들을 찾아 세상 밖으로 드러내었다는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관사골에 가면 기차와 철도 이야기가 있다. 철로와 건널목과 함께 철로 주변에 핀 해바라기와 어둡고 무서웠던 터널도 있다. 저 멀리서 동화 속에만 있을 법한 증기기관차와 철로 변에 지천으로 피어 있던 들국화도 있다.

참을 이고 구불구불한 논두렁을 오고 있는 엄마, 제기차기, 말 타기, 고물을 주워 엿을 바꿔먹던 기억이며, 굴렁쇠 굴리기, 어린왕자, 은하철도 999 등 옛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이야기들이 골목마다 쉴 새 없이 흘러나온다. 쇠락해서 낙후된 관사골이 이제는 골목마다 스토리텔링으로 조근조근 도랑물 흐르는 소리가 난다. 관사골이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정말 글자 그대로 상전벽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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