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의 수석 디자이너였던 칼 라거펠트(1933~2019)는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유명 디자이너이다. 37년간 샤넬의 수장으로서 전 세계 패션계를 주름잡았다. 그가 만든 옷 한 벌 가격이 수천만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나, 그가 죽고 없는 지금의 가격은 천정부지가 되었다.
라거펠트가 수년 전 생전에 직접 제작한 한글 재킷이 최근 유명세를 탄 적이 있다. 샤넬, 깜봉, 마드므와젤, 서울, 카멜리아, 코코 등의 한글 단어들을 직조해 수놓은 독특한 디자인으로, 이 재킷은 사실상 가격을 매기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샤넬의 한글디자인 재킷은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 2015 크루즈 컬렉션에서 처음 등장했다. 이 옷을 영부인 김정숙 여사가 2018년 10월 프랑스 순방 당시 빌려 입었다. 마크롱 여사에게 직접 이 재킷을 자랑했다고 한다. 프랑스 샤넬이 제작하고, 한국의 한글이 디자인되었기에 한·불 양국의 우정을 알리는 상징성에서 더욱 남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김 여사는 귀국 후 빌린 재킷을 샤넬 측에 반납했고, 반납을 받은 샤넬 측이, 이를 국립한글박물관에 다시 기증했다고 한다. 한글이 문자의 영역을 넘어 예술로 확장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고, 라거펠트가 디자인한 작품이어서 화제를 모았으며, 자연스럽게 한국과 프랑스의 외교관 역할을 한 셈이 되었다.
한국의 전통 한복에서 영감을 얻은 옷들이 다시 한글로 디자인되면서 한글의 우수성이 재조명되고 있다. 라거펠트는 DDP 패션쇼 당시, “한글은 정말 아름다운 글자”라며 운을 뗀 뒤, “나는 한국의 전통 옷감을 좋아한다. 그러나 내가 정작 좋아하는 건 한글이다.”라며 자신의 한글디자인을 강조한 바 있다. 샤넬과 같은 세계적인 브랜드가 한글에 주목하고 이를 디자인적 요소로 재해석한다는 것은 한글문화 콘텐츠가 세계로 확장되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라거펠트 뿐만 아니라 파리의 유명 패션디자이너 이렌 반 리브도 한글은 “다양한 현대적 표현이 가능한 문자다”라고 언급했다. 또한 동그라미와 네모, 세모 등 기하학적 패턴이 기본형으로 이뤄져 있어 현대적인 아름다움을 준다고 했다.
한글은 세계에서 주목받는 문자이면서 동시에 남․북한이 함께 사용하는 문자이다. 750만 제외 동포까지 합하면 약 8,000만 한민족이 공유하는 세계유산 급 문화유산이다. 더구나 현존하는 3,000여 언어와 문자 중 창제자와 창제일이 분명한 문자는 한글밖에 없다고 한다. 최근 한류 바람을 타고 훨씬 더 많은 외국인이 한글에 대해 탄복하고 있다. 그런 한글의 원류가 바로 「나랏말ᄊᆞ미」이고, 「나랏말ᄊᆞ미…」는 희방사의 『월인석보』 앞장에 실려 있다. 이 서문이 실린 월인석보 제1권을 이른바 『훈민정음 언해본』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한자로 서문이 구성된 『훈민정음 해례본』 책자가 국보를 넘어 ‘세계기록유산’으로까지 지정되는 동안, 한글로 서문이 구성된 『훈민정음 언해본』 즉, 「나랏말ᄊᆞ미…」는 점점 더 뒷전으로 밀리는 형국이다. 오히려 영주 사람에 의해 더욱더 뒷방 신세가 되어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최근 한글디자인 공예품뿐만 아니라 한글주택까지 등장하고 있다. 「나랏말ᄊᆞ미」 훈민정음을 바탕으로 한 디자인이 시가지 골목을 단장하고, 멋쩍게 비워둔 로터리 조각품으로, 그리고 개장을 앞둔 ‘선비세상’ 중앙 광장을 꾸미는 오묘한 디자인 조형물로 멋지게 활용될 수는 없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