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뭣이 중헌디’는 영화 ‘곡성’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다. “뭣이 중헌디. 현혹되지 마소.” 무엇이 중요한지 모르면 현혹되고. 현혹되면 무엇이 중요한지 모르게 된다는 의미다. 이 말을 임영웅이 트로트로 부르면서 더 유명한 말이 됐다. “슬플 때에도 기쁠 때에도/ 함께한 내 사랑이 최고지/ 어차피 인생살이 새옹지마/ 딱 한 번만 살고 가는 세상/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헌디/ 정답은 바로 사랑이더라.” 영화에서는 “당신은 과연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아느냐?”고 묻고, 임영웅은 “함께한 내 사랑”이라고 대답한다.
2020년 2월에 코로나 펜데믹이 시작되고 6월경에 「코로나 사피엔스」란 책이 출판되었다. 코로나 대유행이 시작되는 때였으니 “인류는 지도에 없는 영역으로 나아간다.” 하면서 놀랍고 두렵고 불안하다는 말로 그 시대를 정의하고 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 대표 석학 6인과 함께 “이런 시대에는 무엇이 중요한가?”를 끊임없이 질문하면서 대답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뭣이 중한디’인 것이다. 이 책이 나온 지 2년이 된 지금 다시 그 책을 읽으면서 그분들의 혜안에 놀라면서 책을 읽은 후의 감상을 적어본다.
최재천 교수는 생태 백신, 행동 백신이 궁극적인 답이라고 하면서 지금부터라도 자연과 절제된 접촉을 하고 생태를 경제활동의 중심에 둬야 한다고 한다. 장하준 교수는 성장중심주의 경제를 재편하고 생명·공공·복지가 중심이 되는 패러다임의 전환기를 받아들이면서, 우리의 역량을 사람을 살리는 경제, 인간을 위한 복지에 쏟아야 한다고 한다. 최재붕 교수는 포노 사피엔스 즉 스마트폰을 신체의 일부처럼 쓰는 새로운 인류를 호모 사피엔스의 표준 인류로 받아들이고, 디지털 문명은 정해진 미래이니 표준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홍기빈 교수는 어떤 역사에도 없는 새로운 길을 우리는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수밖에 없고, 우리는 이제 코로나 이전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으며,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꿈꾸던 기회 즉 인간과 자연과 사회 모두가 좋은 삶을 생각해 보라는 메시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누리 교수는 인간과 자본이 화해하는 방식으로 자본주의가 인간화되지 않으면 우리에게 22세기는 없을지도 모른다고 하면서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이 화해할 수 있는 희망적인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한다. 김경일 교수는 코로나 사태 이후에 행복의 척도가 바뀔 것이라고 하면서 사회적으로 강요된 원트(want)가 아닌 진짜 좋아하는 것을 알아가면서, 더 적은 것을 가지고 적정기술로 공존하는 삶을 살게 된다고 한다.
이제 영주 시내를 다니거나 식당에 들어가 보면 코로나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여행지를 가더라도 코로나를 의식하는 사람들을 만나기가 어렵다. 길거리나 트인 공간에서 마스크를 쓰는 사람들이 많기는 하지만 뭔가 습관적인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 축제는 열리고 축제장으로 사람들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여행지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학교에서는 체험학습과 수학여행이 시작되었고, 종교활동도 코로나 이전의 회복을 외치고 있다. 지금까지 많은 것을 잃어버렸던 공동체들이 코로나 이전으로 되돌아가서 잃어버린 것을 되찾으려고 하고 있다.
그럼 뭣이 중헌디. 코로나 사피엔스라는 새로운 학명으로 불리는 신인류들이 이미 우리 삶 속에 들어와 활동을 시작하고 있다. 신인류 중에는 아무래도 젊은 사람들이 많다. 그들에게 관습이나 사회적 인식은 중요하지 않다.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한다. 공동체를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념이나 성향에 따라 움직이지는 않는다. 코로나 사피엔스에게는 먹고사는 문제도 중요하나 사람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역사가에게도 때때로 발생하는 재앙에 가까운 전염병 창궐은 일상을 급작스럽게, 예측불허로 침범하는 것이었으며 역사적인 설명이 가능한 범주의 바깥에 있다. 윌리엄 맥닐의 말이다.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사람들의 생각이 가장 많이 바뀌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