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배용호의 문화확대경 [231] 순흥안씨 노비촌(奴婢村)과 설렁탕 < 배용호의 문화확대경 < 오피니언 < 큐레이션기사 - 영주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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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호의 문화확대경

배용호 (전 영주교육장)

배용호의 문화확대경 [231] 순흥안씨 노비촌(奴婢村)과 설렁탕

2022. 05. 06 by 영주시민신문

유학을 나라의 통치 이념으로 정한 조선은 무엇보다도 먼저 유교를 기릴만한 우뚝한 상징물이 필요했다. 그래서 공자(孔子)를 비롯하여 사현(四賢)과 십철(十哲)을 모시는 성균관(成均館)을 서둘러 강화했다. 성균관은 우리나라 유학의 총본산이요, 대학의 뿌리이다.

그리고 이곳은 성균관이 있기에 지명조차 관동(館洞)으로 불렸다. 이 관동은 ‘관(館)사람들의 마을’이라는 뜻인데, 성균관의 각종 제사 등의 일을 맡아보는 사람들이 주로 산다고 해서 붙여진 별칭인 셈이다. 그 관동 사람들은 모두 회헌 안향(安珦) 선생 집 노비들의 후손이라 하여 안씨노비촌(安氏奴婢村)이라고도 불렀다.

고려 후기 무렵 성균관이 건립되자 문성공 안향이 집에서 거느리던 1백여 명의 노비들을 우선 성균관에 보내 제사 일을 돌보도록 했다. 조선조 들어 성리학이 국가의 통치 이념으로 자리 잡으면서, 유맥(儒脈)을 형성했던 순흥안씨 후손들도 대거 한양으로 이주했고, 이리하여 관동은 한때 1천여 명에 이르는 커다란 노비촌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이른바 안씨노비촌에는 순흥안씨 노비문서가 아니고는 감히 들어갈 수가 없었다고 한다.

비록 노비 신분이지만, 성현을 모시는 지엄한 일을 행하는 알자(謁者)라 하여 긍지도 대단했다. 양반들조차 이들에게는 존댓말을 썼다고 한다. 더구나 시골 선비들 대부분이 이곳 관(館) 사람들 집에 기숙하게 되고, 이 학생 선비들이 과거에 급제하여 나중의 조정을 주름잡기도 하니 그에 따른 위세는 점점 높아만 갔다. 어느 하숙집에서는 역대 정승․판서 몇을 배출했느니, 어느 집에서는 당상관을 몇십 명 하숙시켰느니 하여 그 실적이 하숙비 책정의 기준이 되기도 했다고 한다.

선농단(先農壇)은, 농사짓는 법을 가르쳤다고 하는 고대 중국의 신농씨(神農氏)와 후직씨(后稷氏)를 제사 지내던 곳으로, 조선 조정의 선농단은 구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자리에 있었다. 신라, 고려에 이어 조선의 왕들은 이곳에서 풍년을 기원하며 선농제(先農祭)를 지냈다.

선농제를 올린 뒤에는 선농단 인근 적전(籍田)에서 왕이 친히 밭을 갈아 백성들에게 농사의 소중함을 알리고 격려하는 권농(勸農) 행사를 가졌다. 왕의 친경(親耕)에는 부근 가까운 고을 현령들이 쟁기질을 돕기도 했다고 한다. 의례가 끝나면 노인과 유생·기생들이 풍년가를 부르는 가운데 봉상시정(奉常寺正)이 곡물의 씨앗을 파종하고, 판관·주부들이 흙을 덮어 마무리한다.

보통 왕의 행차에는 일반 백성들이 얼씬 못하게 되어있는데, 이날은 선농단에서 왕이 백성과 똑같이 쟁기 매고 밭갈이하니까 백성들이 왕을 친견할 수 있어 선농단은 인산인해가 되었다고 한다. 이날 모인 사람들에게는 음복처럼 제물로 끓인 선농탕을 먹였다.

원래 제사에는 신(神)에게 공식(共食)하는 뜻에서 희생된 제물로 국을 끓여 제사에 참여한 사람들이 골고루 나누어 먹음으로써 신인일체(神人一體)가 된다. 선농단 제사에도 소와 돼지를 통째로 잡아 올리게 되는데, 이때 제물로 국을 끓이는 일은 관동(館洞)의 안씨노비촌 사람들의 몫이었다. 제물 쇠고기만으로는 모여든 인파를 감당하기 어려워 소뼈와 소머리를 함께 넣어서 국을 끓였다.

이 국을 선농탕이라고 하는데, 이때 선농탕을 직접 끓인 사람들도 관동 노비들이었다. 그리고 이 제사 음식을 여염집 상대로 팔기 시작한 것도 관동 노비들이었다. 곧 선농탕의 원조는 관동이란 뜻이며, 한말까지 선농탕은 안씨노비촌에 가야만 맛볼 수 있는 특수 음식이었다. 선농탕의 이름은 나중에 설롱탕-설렁탕으로 음이 바뀌었다.

한말 갑오개혁으로 노비가 해방되어 관촌 사람들이 흩어지면서 그들의 솜씨인 선농탕이 전국으로 전파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설렁탕은 순흥안씨네 가문 음식인 셈이다. 나아가, 스토리를 완벽히 갖춘 영주의 대표적인 대중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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