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 빵이 불티나게 팔렸다. 출시 40일에 천만 개나 팔렸으니 엄청나다 하겠다. 삼성 휴대폰 포켓몬 에디션도 출시 직후 5분 만에 완판 됐다. 90년대 포켓몬스터라는 만화영화를 보며 포켓몬 빵을 먹고, 빵 봉지를 뜯으면 나오는 포켓몬 캐릭터들, 포켓몬 스티커를 책받침에 붙이면서 유년시절을 보냈던 기억들이 2022년에 되살아나는 것이다. 레트로(Retro)라는 말이 있다. 추억, 회상, 회고를 뜻하는 영어 ‘Retrospect’의 줄임말인데 이러한 흐름이 포켓몬 현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다니엘 레티히가 지은 「추억에 관한 모든 것」에 ‘노스탤지어(nostalgia)’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설명을 하고 있다. 노스탤지어는 고향을 몹시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향수를 의미한다. 그리스어로 ‘귀환’을 말하는 ‘nostos’와 ‘고통’의 ‘algos’를 합친 말로 귀향을 하지 못해 생기는 고통이나 질병이라는 의미로 사용되다가 현대로 오면서 의미가 바뀐다. 지금은 긍정적인 의미로 변해서 이제 향수는 영혼을 위한 비타민이 되고 육체적 건강을 증진시키는 묘약이 된 것이다. 인생은 자동차 여행과 같아서 가끔은 백미러를 보듯이 추억을 돌아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키에르 케고르는 “자기만의 추억이 있는 사람은 온 세상을 가진 사람보다 더 부유하다.”고 했다. 세상에 추억이 없는 사람은 없다. 누구든지 자기만의 추억이 있는 것이다. 이 실존주의 철학자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은 온 세상을 가진 사람보다 부유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아주 가끔은 과거를 떠올리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오직 앞만 보고 간다는 것이다. 직진만이 살길이라는 나름대로는 엄청난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백미러를 보지 않고 운전하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좌우에서 달려오는 차는 보지 못하고 달려가는 삶과 같은 것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땐가 싸리나무를 하러 마을 뒤에 있는 무학봉으로 갔다. 알싸한 싸리나무 꽃향기를 맡으면서 정신없이 싸리나무를 베다가 땅벌 집을 건드리고 말았다. 갑자기 수십 마리의 땅벌이 쏟아져 팔, 다리는 물론이고 겨드랑이와 사타구니까지 공격해오는데 정신이 없었다. 땅벌이 달려들면 엎드려서 피해야 하는데 그럴 겨를도 없이 정신없이 내달리는데 어린 걸음에 땅벌의 속도를 이길 수가 없었다. 집에 돌아와 보니 란닝구(러닝셔츠) 속에까지 벌이 들어 있었다. 특별한 약이 없었던 당시였으니 벌에 쏘인 자리에 엄마가 된장을 발라주는데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어 내내 훌쩍거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사십 년이 지난 어느 날인가 이 유년의 기억이 갑자기 떠올랐다. 추억은 과거의 공간에만 있는 것으로 알았는데 현재 시간에 생생하게 재생된 것이다. “집에 돌아와 쏘인 자리에 된장을 붙이면서/ 싸리비를 만들어 마당을 쓰는 일이/ 살을 내어놓는 아픔임을 알았다./ 가르치거나 시를 쓰는 일도/ 싸리비 한 자루를 만들어/ 세상의 한 부분을 쓸고 닦는 것임을 알았다./ 비록 쓸어야 할 것들이 얼음처럼 달라붙어/ 쉽게 부서지거나 떨어지지 않아도/ 그래도 아침저녁으로 비질을 한다./ 이 땅위에 있는 모든 보석들은/ 캄캄한 바위 속에서도 비질을 통해/ 조금씩 드러났음을 믿기 때문이다.”(졸시 ‘싸리비에 얽힌 회상’ 뒷부분)
추억은 힘이 있다. 추억은 단순하게 그냥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만이 아니다. 추억은 현재에서 재생되고 삶의 비타민으로 작용하여 삶을 윤택하게 한다. 겨울 끝자락에서 보리밭을 밟거나 산에 가서 송충이를 잡던 일, 여학생들이 놀던 고무줄을 끊고 줄행랑을 쳤던 일이며 친구들과 마을을 돌아다니며 모둠밥을 해 먹는데 목구멍까지 밥이 차서 숨쉬기가 거북했던 추억들. 생각하면 수도 없는 추억들이 과거의 공간에서 스멀스멀 솟아난다. 그렇게 추억을 떠올리면서 먼 산을 바라보면 산 빛이 청랑하듯이 우리도 삶에 힘을 얻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