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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중의 영주 톺아보기

김신중(시인)

김신중의 영주 톺아보기 [12] 뛰는 사람 위에 노는 사람 있다

2022. 04. 04 by 영주시민신문

이 세상에 태어나서 맨 처음으로 기억하는 것은 뭘까? 사람마다 경험에 따라 제각각일 텐데, 필자의 경우는 한 겨울에 누나가 나를 업고 얼음 논바닥에 던져 둔 것이었다. 누나는 누나대로 친구들과 얼음을 지치고, 나는 추운 겨울에 얼음 위를 뒹굴면서 논바닥을 기어 다녔던 게 최초의 기억이다.

좀 커서는, 전문 사진사가 마을에 찾아와 한 번도 보지 못한 환상적인 모형 비행기에 누나와 나를 태우고 사진을 찍어 주었던 게 생애 두 번째 기억이다. 우리 어렸을 때만 해도 책을 읽으려 해도 읽을 책이 없었고, 그림을 그리려고 해도 크레파스나 도화지가 거의 없었으니 노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었지만 그래도 놀았던 기억이 가장 뚜렷하게 남아 있는 것이다.

요즘 방영되고 있는 예능 중에 놀이와 관련된 프로그램이 많다. ‘뛰는 놈 위에 노는 놈’, ‘노는 언니’, ‘놀면 뭐하니’, ‘노는 브로’ 등이다. 프로그램마다 특징은 있지만 컨셉은 제대로 놀아보는 것에 있다. 대체로 젊은이들이 많이 보고 어른들은 많이 보지는 않는다. 진지하게 인생을 살아온 어른들에게 웃고 떠들면서 노는 프로그램이 체질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

한 사람이 여러 부캐로 나오는 것도 산만하고 헷갈린다. 부캐는 본 캐릭터가 아닌 새로운 모습이나 캐릭터로 행동할 때를 가리킨다. 유재석이 유산슬, 유르페우스, 유샘, 유반장, 유본부장, 닭터유 등의 부캐릭터를 가지는 것인데, 어른들로서는 혼란스러운 것이 당연하다 하겠다.

어른들이 이런 프로그램을 많이 보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나이가 들수록 삶에 대해서 진지해질 수밖에 없는 어른들로서는 왠지 노는 프로그램이 산만하고 시끄럽게 느껴질 수 있다. 어려운 시대를 뚫고 지나왔기에 웃고 떠들고 노는 것에 선뜻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다.

스튜어트 브라운은 「놀이, 즐거움의 발견」에서 놀이의 재미를 느끼지 못하거나 놀지 못하는 사람들을 멍게에 비유했다. 어린 멍게는 대부분의 시간을 성장하며 바다를 탐구하면서 보내는데 자라서 성체가 된 멍게는 바위나 선박 선체, 말뚝에 붙어서 순전히 수동적으로 살아간다. 지나가는 해류가 생존하는 데 필요한 영양분을 충분히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멍게 성체는 자신의 뇌신경을 먹으면서 소화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정말 섬뜩한 비유다.

놀이의 반대말은 일이 아니라 우울함이라고 한다. 놀이와 일은 정반대쪽에 위치한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이다. 놀이와 일은 반대쪽에 박힌 말뚝이 아니라 집과 기둥을 받치고 있는 대들보에 비유하기도 한다. 얼쑤 하고 탈춤을 출 때, 허리나 팔, 다리 모양을 보면 쌀가마니를 들고 수레에 싣는 행위와 비슷하다. 노동요를 보더라도 일과 놀이가 결합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일을 놀이처럼 즐겁게 하면 힘도 덜 들고 재미도 있는 것이다. 어쩌면 놀이를 잊어버린 사람들은 대들보 하나를 잃어버린 모양새가 되어 삶의 한 부분이 무너졌다고 할 수도 있다. 그만큼 놀이의 감정은 중요하다.

물론 놀이라고 해서 무조건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스튜어트 브라운은 충동적인 속성을 가진, 그리고 중단할 수 없는 욕망이 주도하는 행동은 놀이가 아니라고 했다. 가령 술이나 도박, 온라인 게임에 빠져 놀이를 즐긴다면 이미 그것은 놀이가 아니라 중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카우치 포테이토(couch potato)란 말이 있다. 카우치(couch,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며 포테이토 칩(potato chip)을 먹는 사람을 줄여 말하는 속어로 만사를 귀찮게 여기는 사람을 말한다.

마우스 포테이토족(Mouse Potato族)은 많은 시간을 컴퓨터와 함께 보내는 사람들을 이르는 말로 웹서핑이나 게임, 채팅, 유튜브 등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말하는 데 이런 것을 놀이라고 할 수는 없다.

놀이는 창의성을 길러준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빗자루를 주면 비행기도 되고 칼싸움 하는 검도 된다. 놀이하는 사람은 억압과 속박에서 해방된다. 웃음이나 재미는 억압의 땅에서는 절대 필 수 없는 꽃이다. 그러니 내게 맞는 놀이를 찾아야 하고 재미있게 놀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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